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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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맛집 음식도 뚝딱… 간편하고 맛도 ‘good’ [안젤라의 푸드트립]

밀키트 / 손질된 재료·레시피 함께 배송… 시장 급속 확대 / 美선 당뇨식·글루텐프리 등 다양한 상품들 구성 / 우리도 소비자 기호 등 간파… 식단별 세분화 전망
밀키트(Mealkit). 식사를 뜻하는 밀(Meal)과 구성품 또는 세트를 말하는 키트(Kit)의 합성어로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정간편식 시장에서 가장 진화된 카테고리 중 하나다. 하루 이틀 전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면, 그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가 손질 또는 세척되어 집 앞에 도착하고, 주어진 레시피대로 따라서 만들기만 하면 완성된다. 안젤라의 마흔일곱 번째 푸드트립은 밀키트다.
소늘녘갈비탕

#요리하는 인간, 호모코쿠엔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밀키트와 가정간편식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가볍게 조리만 하면 되는 간편식 대신 굳이 요리를 해야 하는 밀키트가 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단순히 신속함과 간편함만 따지면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돼지국밥,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쫀득한 매운 닭발 등이 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키트는 소비자의 어떤 니즈를 채우고 있기에 전 세계인의 식탁과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 있을까.

미국 하버드대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교수는 요리가 없었다면 현생인류, 즉 호모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초로 불을 제어하고 요리를 발명한 인류 호모에렉투스를 치켜세웠다. 인간의 역사는 요리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그의 주장에서 ‘호모코쿠엔스(Homo coquens)’라는 라틴어가 만들어졌는데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불과 도구를 활용해 요리하고, 여럿이서 함께 나눠 먹음으로써 사회적인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재료가 모두 손질돼 집으로 배송되는 밀키트는 장을 보거나 재료를 손질하는 등 귀찮은 작업 없이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간파한 전략상품이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의 연구에 따르면 밀키트를 구매하는 이유는 간편함, 재료구매 부담 경감, 시간 절약, 요리실력 보완 순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 컵밥을 사서 엑기스에 뜨거운 물만 부어 먹거나, 미트볼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은 ‘요리’가 아닌 ‘조리’일 뿐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기는 어려운 상품이다. 따라서 밀키트는 호모코쿠엔스로서 요리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와 ‘귀차니즘’을 모두 해결해 주는 솔루션으로 떠올랐다.

#내 몸에 맞는 식단을 선택해 먹는다

“땅콩은 빼주세요”. “락토프리 우유로 주세요”, “할랄 인증을 받은 닭고기인가요”. 몇 년 전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이런 요청이나 질문을 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나 신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개인의 절대적인 식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식단이 그렇게 다양한지 의문이 생겨 비행기를 탈 때마다 특별 기내식(Special Meal)을 살펴보는 편이다. 그런데 당뇨식, 저염식, 유당제한식, 해산물식 등의 건강식뿐만 아니라 힌두교식, 이슬람식, 유대교식, 자이나교도용 베지터리언식 등의 종교식과 땅콩 알레르기, 호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위한 알레르기 방어식 등 생각보다 많은 식단이 준비되어 있다. 항공사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까다롭고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밀키트 시장의 최전선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의 한 밀키트 회사의 메뉴는 글루텐프리(gluten-free), 유당제한(dairy-free), 저탄수화물(low carb), 채식(vegetarian) 등 자신의 식단에 따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분리해 놓았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면 지키기 힘든 식단을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내용물에 대해 사전에 정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다. 팁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는 밀키트를 주문해서 먹었을 때 팁도 아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삼원가든 등심불고기

#마케팅 중심에서 취향 중심으로

다양한 식단과 인종이 공존하는 미국의 밀키트를 살펴보니 한국의 밀키트 시장이 어떻게 확대될 것인지 예측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밀키트 메뉴를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셰프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개발된 고메 상품, 맛집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개발된 시그니처 상품, 최대한 쉽고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피드 상품이다.

반면 미국의 밀키트 메뉴는 식단에 따라, 고기 종류에 따라, 조리 시간에 따라, 칼로리에 따라 분류해 굉장히 다양한 상품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한국은 현재 마케팅·홍보 관점에서 상품이 개발되었다면, 미국은 개인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구분이 되어 있다. 밀키트 시장이 더욱더 확대될수록 한국의 밀키트도 미국식처럼 식단별 세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해 본다.

한국의 식당이 지닌 어려움 중 하나가 한 가지 메뉴를 시켜도 서너 가지 이상의 반찬을 제공해 줘야 하고 임대료, 주방인력, 서비스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호와 심리를 간파하는 밀키트를 만든다면 식당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고, 소비자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언택트 푸드비즈니스 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이 되지 않을까.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