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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갑옷’·고려 고선박 ‘마도3호선’ 발굴 방식 고민한 이유는?

경주 쪽샘지구서 출토 말 갑옷 / 유물정보 사수 위해 통째로 발굴 기획 / 분리 시킬 수 있는 흙 28톤과 함께 꺼내 / 철편 묶은 직물 종류·방식 등 규명 가능 / 고려시대 고선박 ‘마도3호선’ / 고선박 14척 중 가장 완형 가깝게 남아 / ‘해체 인양’ 아닌 통째 인양 고려했지만 / 비용·보존문제 등으로 아직 바닷속에

2009년 경주 쪽샘지구에서 출토된 신라 마갑(말 갑옷)은 발견에서 수습까지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안장, 등자 등의 다양한 마구류가 같이 출토돼 신라 기마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가로 2.921m, 세로 0.98m 큰 덩치의 이 유물을 통째로 꺼내기 위해 모의실험까지 진행하는 등의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충남 태안 마도의 바다에서 고려시대 고선박 ‘마도3호선’이 발견됐다. 이 배는 지금까지 발견된 14척의 고선박 중 가장 완형에 가깝게 남아 있어 수중발굴을 담당하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일반적인 고선박 발굴 방식인 ‘해체 후 인양’이 아니라 통째로 꺼내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발굴 비용이 10배 이상 들어갈 뿐 아니라 이후 보존처리, 관리 등도 까다로워 형태만 확인한 뒤 일단 바닷속에 그대로 두었다.

마갑이나 마도3호선은 발견 자체도 큰 주목을 받았지만, 드물게 발굴의 방식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해야 했던 사례다. 수 백년의 시간을 땅과 바다에서 견디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큰 덩치의 유물을 한번에 꺼내는 게 기술적으로 쉽지 않고 발굴 후의 보존처리, 보관 및 활용 방식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주 쪽샘에서 발굴된 신라의 마갑.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유물에 담긴 정보 극대화를 위한 일괄 수습

“마갑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서 묻혀 있던 그대로 발굴한 뒤 보존처리를 거쳐 (마갑의) 뒷면을 볼 생각을 한 거죠.”

발견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마갑을 통째로 꺼내는 방식을 기획한 문화재청 박윤정 발굴제도과장의 말이다. 여기에는 마갑의 발굴이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점, 다른 방식을 택한 이유가 담겨 있다.

2009년 경주 쪽샘에서 발견된 신라의 마갑을 발굴하고 있는 모습. 마갑이 가진 고고학 정보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통째로 발굴하는 방식을 취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철제 유물은 유물과 그것에 붙어 있는 흙을 접착성 약물을 사용해 굳힌 뒤 발굴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부식되고, 살짝살짝 금이 가 있는 상태라 섣불리 흙을 떼내려고 했다간 유물이 파손되기 십상이어서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일부를 떼내긴 하지만 굳힌 흙은 그대로 유물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740매의 철편을 끈으로 묶어 만든 마갑을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의 상태로만 만들어 꺼냈다’는 박 과장의 설명은 마갑을 통째로 꺼내어 묻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분리시킬 수 있는 28t의 흙과 함께 꺼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마갑 뒷면에 집중적으로 붙어 있던 흙을 털어내 가려져 있던 정보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철편을 묶기 위해 사용한 견, 마 등 유기물 직물의 종류와 묶는 방식의 규명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통째로 발굴함으로써 마갑이 담고 있는 고고학적 정보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셈이다. 지난 7일 발간된 보고서에는 이 같은 성과가 담겨 있다. 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유물이나 유적이 갖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발굴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일괄 수습하지 않았다면 마갑에 붙어 있던 유기물의 정보는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특히 마갑처럼 덩치가 큰 유물을 통째로 꺼내려면 고민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큰 덩치의 유물을 통째로 수습하는 방식은 경주 안압지 목선의 실패 사례가 유명하다. 1975년의 일이다. 길이 6.2m, 폭 1.1m 크기의 이 배를 옮기려고 부목을 대어 고정하고, 여러 명의 인부가 달라 붙었으나 이동 중 중간 부분이 부러지는 대형사고가 났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해당 목선을 만날 수 있다.

충남 태안의 바다에서 발견된 마도3호선은 고려시대 운항 당시의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도3호선, 통째 인양 고려는 했으나…

750여 년 전 서해를 항해하다 침몰한 고선박이 발견된 모습 그대로 대형 수조에 잠겨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라. 길이 약 12m, 폭 약 8.5m, 선심(船深·배의 깊이) 약 2.5m 규모의 배다. 2009년 마도3호선을 발견했을 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통째로 인양하는 걸 구상한 건 이런 모습이 그 자체로 큰 볼거리가 되고, 그만큼의 관심을 받을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일 터다.

1970년대 신안선 이후 바다에서 발견된 고선박은 모두 14척. 박물관에 전시된 고선박은 수중에서 형태를 확인한 뒤 해체 후 건져 올리고, 보존처리 후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마도3호선 발굴은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 워낙에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을 제외하면 바닥, 좌·우현, 선수, 선미의 형태가 온전하다. 처음으로 돛대를 인양하기도 했다. 스웨덴의 바사호, 중국의 남해1호 등 비슷한 사례가 연구소를 자극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도3호선은 발견 후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발견된 바닷속에 그대로 잠겨 있다. 앞으로 발굴해야겠지만 일괄 인양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다. 발굴 비용만 해도 해체 후 인양보다 10배는 더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어떻게 통째로 건져 올린다고 해도 보존처리, 관리 등이 어렵다. 우선 배를 보관할 대형 수조를 갖춘 시설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 관리했다간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연구소 문환석 전 수중발굴과장은 “해체해서 인양하면 보존처리 등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며 “통째로 꺼내면 배에 있던 유물의 확보에 보다 유리하겠지만 곡식을 실어나르던 마도3호선에서 (이전에 발굴된) 다른 고선박과 차별화된 유물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마갑처럼 통째로 꺼낼 경우 특별한 고고학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마도3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태안선, 마도1·2호선 등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상황이다. 연구소 양순석 학예연구관은 “마도3호선은 마도1·2호선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차별화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해체 후 인양을 해도 수중에서 상당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도3호선이 다시 바다 위로 떠오르는 것은 언제쯤일까. 고선박은 인양 후 적어도 10년은 탈염, 경화, 건조 등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관련 시설에는 마도1·2호선의 보존처리가 진행 중이라 이곳에 자리가 날 때까지는 인양을 미룰 수밖에 없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