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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지성호, 한국의 프록스마이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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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걸린 美 제노사이드 협약 / ‘신념의 정치인’ 있었기에 채택 / 북한인권법도 비슷한 어려움 /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에 기대

“저는 오늘부터 날마다 상원에서 미국이 제노사이드 협약을 비준하도록 촉구하겠습니다.”

1967년 1월 11일, 위스콘신주의 윌리엄 프록스마이어 민주당 상원의원이 상원 연단에서 공언했다. 예일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군복무한 후, 기자와 노조활동을 하다가 정계에 입문한 재정 전문가였다. 정부지원 프로그램 중 세금 낭비성 사업을 매달 선정하고 납세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의미로 ‘황금양털상’(Golden Fleece Award) 수상자로 공표한 괴짜 같은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1948년 미국이 유엔에서 채택을 주도해 서명하고도 상원 외교위원회에 묻혀 있던 제노사이드 협약 비준에 발 벗고 나섰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공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1986년 상원이 제노사이드 협약을 최종 표결처리하기까지 20년간 상원 회기 중 매일 연설했고, 총 3211회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2년 후 레이건 대통령의 서명으로 미국은 40년 만에 협약을 비준했다.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중 친족들이 학살되는 가운데 미국으로 망명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의 머리에서 나왔다.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를 살인(homicide)이라고 부르듯, 나치 독일처럼 민족·종교 등 집단 말살 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로 명명한 것이다. 렘킨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미국 수석검사였던 로버트 잭슨 연방대법관 등을 접촉해 ‘제노사이드’가 법정에서 언급되게 했고, 1인 로비를 펼쳐 유엔의 제노사이드 협약 채택에 성공했다.

처음 미국은 렘킨의 제안에 호의적이었다. 1948년 유엔 총회의 제노사이드 협약 만장일치 채택에 앞장섰고,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상원에 비준 동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흑백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남부 출신 상원의원들이 주권 침해라고 주장해 추진력을 잃고 잊혀졌다.그러나 프록스마이어 의원처럼 신념의 정치인이 있었기에 느려도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북한인권법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2005년 황진하, 김문수 의원을 시작으로 여러 의원이 법안을 냈지만, 북한을 자극하고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진보’를 자처하는 반대 의원들 때문에 10년간 진전이 없었다. 국군포로와 납북억류자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초당적 지지는 요원했고, 2016년에서야 제정됐다.

북한인권법은 여러 시민단체, 언론, 의원들이 노력한 결실이었다. 특히, 2014년 유엔 조사위원회가 북한의 중대 인권 침해를 반인도 범죄로 규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불리해지자 북한인권문제를 외면했던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문재인 의원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고,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후로 북한인권법은 없는 법처럼 됐다. 정부는 국제협력대사 임명을 거부하고 있고,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도 내지 않고 있다. 작년 가을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일부 장관과 기관장들이 직무유기로 질타 받았지만 살펴보겠다고 한 후 아무 소식이 없다.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은 다음 국회의 과제로 남았다.

그래서 국회로 가서 한국의 프록스마이어가 될 만한 사람을 기다렸다.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로 입성하는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의원 당선자다. 북한에서 한 손과 한 다리를 잃고도 목숨 걸고 한국으로 와서 중국 내 탈북민들을 구출해온 그는 탈북민 안전보장과 납북억류국민 송환 등을 날마다 촉구할 것이다. 목발과 무거운 의족을 번갈아 쓸 때마다 그는 수만번 삶의 의미를 새겼다. 이제 국회에서 무엇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수치인지 날마다 말하고, 정치인들이 상기하게 하라. 언론과 국민들도 지지하게 하라. 프록스마이어 같은 정치인이 우리 국회에 절실하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