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을 앞둔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건물 지하에 있는 아트위캔 사무실을 찾았다.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 만난 왕 대표는 페인트 붓을 든 채 반갑게 맞았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연습을 쉬는 만큼 연습실 내부 수리를 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그 혼자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하고 꼭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쓴다. 장애예술단체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그로부터 발달장애예술인과의 인연과 활동, 그간의 어려움, 바람 등을 들었다.
―코로나 사태 속 어떻게 지내나.
“장애예술인들이 코로나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 4월 장애인의 달에는 매년 행사가 몰렸는데 한 건도 없다. 한 케이블방송과 문화 나눔 노래자랑 오프닝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취소됐다. 너무 쉬면 단원들의 기량도 떨어질 뿐 아니라 힘들어한다. 대표인 제가 백방으로 공연 무대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다. 뭐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 안 되면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연주 무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에서 하는 일과 대표적인 장애예술단원을 소개한다면.
“발달장애인 음악 전문 연주단체다. 발달장애인이라 하면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 예술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무대를 만들어주고 전문 예술인으로 육성한다. 100여명의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이 있다. 초보자들이 아니고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국악, 팝 등을 전공한 전문 예술인들이다. 2013년 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 애국가를 독창한 박모세, 판소리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장성빈, 2013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에서 독주한 기타리스트 김지희. 유럽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소프라노 박혜연, 팝밴드 슈가슈가 리더인 보컬 임세훈은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알려진 아티스트들이다.”
―장애예술단체로는 드물게 수많은 국내외 공연 실적이 있는데.
“지난해 7월에는 제가 인솔해 10일간 포르투갈 리스본과 스페인 마드리드 공연을 다녀왔다. 리스본 발달장애인협회에서 연주를 했고, 론다시 스페인광장 무대에도 섰다. 마드리드 한국문화원에서는 전통공연도 선보였다. 가는 곳마다 현지인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한 관객은 우리 공연을 보고 “발달장애인들의 연주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 우리에게는 발달장애인 공연 전문단체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장애를 극복해 훌륭한 실력을 갖춘 음악인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단원들에게는 이 원정 공연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시로 이때의 추억을 얘기한다. 이런 연주 경험과 성취가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장애를 딛고 전문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자랑거리가 있다.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다. 밤낮없이 연습해 이룬 결과다. 2016년 8월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에서 우리 슈가슈가 팝밴드가 은상, 아트 위캔 현악 앙상블이 장려상을 받았다. 2017년 10월 제1회 한국발달장애인 음악축제에선 슈가슈가 팝밴드가 최우수상을, 아트위캔 클라리넷 앙상블이 우수상을 받았다. 2018년 10월 제2회 전국발달장애인 음악축제에서는 그랑―미라클밴드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거의 매년 해외공연도 다녀왔다. ‘세계는 넓고 공연할 무대는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16년 11월 일본 오사카, 2017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어린이 병원, 2018년 5월에는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공연을 다녀왔다. 지난해 6월 일본 요코하마를 다녀왔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앞으로 가능한 한 많은 무대를 만들 계획이다.”
―발달장애예술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성악을 했다. 이탈리아 아코포 토마디니 국립 음악원과 로마 아르츠 아카데미아를 졸업한 뒤 귀국해 2000년 뮤지컬 ‘팔만대장경’에서 주연을 맡는 등 여러 무대에서 활동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성악인의 꿈을 접고 대학교 강사로 활동하다 우연한 기회에 문화예술기관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정동예술극장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15년 홍보·기획 업무를 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정동극장에서는 전통상설 공연에 외국인 관람객을 많이 유치해 월드컵기장상을 받았다. 국립박물관재단에 있을 때는 국립박물관의 성공적인 개관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부장관상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박물관재단에서 장애인 행사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갈등이 생겼다. 더는 이곳을 다니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때 평소 저를 눈여겨봐 온 장애예술계 인사가 성악을 한 데다 행정경험이 있으니 장애예술단체에서 일하면 어떠냐 제의해와 2012년부터 (사)사랑나눔 위캔에서 장애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듬해에 제가 발달장애 음악인들을 전문적인 예술인으로 육성하는 이 단체를 만들어 8년째 일하고 있다. 저는 신앙인이다. 삶을 돌아보니 그간의 공부와 인맥, 행정경험 등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장애아이들을 위해 쓰라고 훈련을 시킨 거라 생각됐다. 이들과의 만남은 저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더욱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이 자리로 인도한 것 같다.”
―장애예술인 단체 대표로 장애인의 ‘특별한 능력’ 발굴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의학계의 시인’으로 불린 미국 정신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장애는 단순한 신체적 손상과 결여가 아니라 다른 지각세계, 다른 생활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라고 했다. 비장애인이 놓친 몸과 정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예술인들을 대할 때마다 이 말을 실감한다.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서 애국가를 제창한 박모세군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인간승리의 아이콘이다. 태아 때부터 후두부에 뼈가 없어 뇌의 90%를 절제한 그는 감동을 준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자폐증에도 어릴 때부터 재능 교육을 통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우리 단체가 규모는 작지만 그 역할을 하려 한다. 예술적 재능이 있으나 장애 때문에 꽃피우지 못한 이들에게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그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보시다시피 사무실 겸 연습실이 지하에 있고 규모도 작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친한 이들에게 가끔 어려움을 얘기하면 “왜 하느냐”며 말리곤 한다. 그렇지만 천생 내 일이라고 여기며 이겨낸다. 아이들과 열심히 연습해 좋은 공연을 하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작지 않다. 단원들을 보면 힘이 절로 난다. 이들과 어울리며 수업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없는 탓에 텅 빈 연습실에 혼자 있으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인복이 많아서인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동준모 상명대 관현악과 교수, 정순석 상명대 관현악과 교수, 서희대 지휘자, 전장수 클래식기타리스트 등 많은 분들이 든든하게 계신다. 장일범 음악평론가와 황만익 뮤지컬 배우가 홍보대사로 큰 도움을 준다. 모두가 발달장애아들의 예술적 꿈을 이뤄주는 일이라 생각하시고 기꺼이 도와주신다. 요즘은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예술인 공모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다. 빨리 코로나19가 잦아들어 아이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며칠 후면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예술 교육자로서 감회와 바람이 있다면.
“제가 아무리 이들을 안다고 해도 비장애인이다. 장애아들의 부모만큼이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단원이나 그 부모님을 대할 때 늘 조심스럽다. 요즘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지체장애는 줄고 발달장애가 늘고 있다. 발달장애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너무 힘들어한다. 그런 부모들에게 우리 아트위캔의 자랑스러운 단원들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발달장애 예술단원들의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음악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음악은 살아가는 데 산소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발달장애아들은 자기의 의사나 감정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지만, 음악을 통해서는 이런 것들을 전달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다. 장애인들에게는 음악이 필요한 이유다. 또 정부에 당부하고 싶다. 장애예술인에 생계 걱정 없이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에 관심을 가져달라. 무엇보다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장애예술인 DB 구축이 시급하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