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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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동성착취물 단 1건 다운받아도 5년10개월형 ‘가차없는 美’

[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 ‘W2V’ 미국인 15명 판결문 등 분석 / ‘두 얼굴의 성범죄자’ 경각심 높일 목적 / 전과 없는 평범한 시민 되레 중형 경향 / 범죄자 교화·인권보다 아동 보호 중시 / 출소 뒤 직업·거주·PC 사용 엄격 통제 / 당국 승인 없인 스마트폰도 사용 못해 / 컴퓨터 관련 일자리·자원봉사도 불허 / 美, 33년째 디지털 성범죄 대응팀 운영 / W2V 운영자 韓선 혐의 2개·美선 9개 / “국내도 재범 막을 새로운 차원 규제를”

“피고인이 우리 사회의 일원(functioning member of society)으로 생활해왔다는 것은 우리가 체포 통계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웰컴 투 비디오(W2V)’에서 아동성착취 영상물 160여개를 내려받은 혐의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경찰에 붙잡힌 마이클 암스트롱(37)의 양형보고서에는 이 사안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국에선 영상 소지 사실이 드러나면 피의자의 평소 행실이나 초범 여부에 상관없이 엄벌한다. 그 자체로 성폭행에 가담했다고 보는 것으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가 녹아 있다.

아동인권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미국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 걸까. 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국적 정보기업 톰슨 로이터의 도움을 받아 W2V 사건 미국인 검거자 15명의 형사고발장과 공소장, 양형보고서, 판결문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W2V라는 ‘정확하게 동일한’ 범죄 검거자들에 대한 한·미 양국의 사법처리 결과 비교는 우리 법조계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분석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예안 미국 변호사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박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일부 검거자 사례는 미국 법무부 발표와 현지 언론보도를 참고했다.

◆미 법원, W2V 가차없이 엄벌

우선 미국은 피의자의 배경보다 범죄행위 자체에 주목해 엄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일부 케이스에서 초범이나 자백 등 이유로 검찰 단계(유죄협상제도) 구형량이 다소 줄어든 흔적이 보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최소 형량인 60개월은 선고됐다. 우리처럼 집행유예나 벌금형만 선고되는 일은 전무했다.

370여건의 아동성착취물 수령 및 소지 혐의로 2018년 6월 검거된 빌리 페날로자(30)는 재판 과정에서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노숙인인 아버지 아래서 불우하게 자란 점, 그 역시 아동기(7세) 때 남자 사촌에게 성적학대를 당한 점 등을 강조했으나 법원이 이를 따로 참작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페날로자 측은 또 “구속되기 전까지 우버 운전기사로 한 달에 5000달러를 벌었다”며 ‘평범한 사회구성원’이었다는 점을 부각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90개월의 실형이었다.

박예안 변호사는 “미국 사법당국은 전과가 없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실히 생활해 왔다는 점을 오히려 높은 형량을 선고해야 하는 이유로 보았다”며 “우리 주변 누구라도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두 얼굴’의 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가중요소는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 아칸소주에서 검거돼 97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된 제임스 다오생(26)의 경우 영상물을 정리해 보관하고 있었던 점이 가중요소로 작용했다. 그의 USB드라이브에는 ‘유명하고 희귀한 컬렉션’, ‘미성년 소녀 사진’ 등 다양한 하위 폴더가 있었는데, 법원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의 영상물 소지는 충동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보았다. 그가 소아성애 관련 문서를 가지고 있던 점과 가학적인 이미지 파일이 포함돼 있었던 점, 토렌트 등 전문 기술을 사용한 점도 가중요소로 작용했다.

이밖에도 영상을 고의로 유통하거나 12세 미만의 아동이 나오는 경우도 각각 가중요인이 됐다. 아동성착취물을 600개 이상 소지할 경우에는 가중처벌됐지만, W2V에 1회 접근해 아동성착취물 1건을 내려받은 혐의로 기소돼 70개월형을 선고받은 전직 미 국토안보수사국(HSI) 수사요원처럼 소지물 개수가 적다는 점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사용한 부분은 ‘자금세탁’ 혐의가 적용됐다. W2V를 운영한 손정우가 한국에서 ‘음란물 제작과 배포’ 혐의로만 기소된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아동성착취물 광고와 유통, 자금세탁 등 9개 혐의가 적용됐다. 한국 법원이 손씨에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한 ‘회원들이 업로드한 영상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점’, ‘범죄수익이 환수될 것으로 보이는 점’이 미국에선 ‘공모’와 ‘몰수혐의’로 공소장에 별도 적시된 점도 눈에 띈다.

변화한 범죄 환경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엿보였다. 영상 소지 혐의로 검거된 마이클 에지그버(22)의 양형보고서를 보면 “기술 발전으로 하드 드라이브 가격이 저렴해졌고 몇 초 만에 아동음란물을 수집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범죄의 심각성과 타락성을 급증시켰다”, “범죄자들은 인터넷 활동 기록을 지우고 암호화하는 등 더 치밀해졌다” 등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범죄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박 변호사는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교화의 목적을 양형 요소에 반영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출소 뒤 개인 컴퓨터도 허락하에 사용”

출소자의 기본권을 ‘철저히’ 제약하는 보호관찰 제도도 돋보였다.

W2V 판결문에 적시된 ‘의무가석방(supervised release)’ 조항을 쭉 살펴보면, 일단 피의자들은 보호관찰 기간 동안 당국의 감독과 허락 없이는 어떠한 미성년자와도 접촉할 수 없으며 아동 관련 직업도 가질 수 없다. 정신건강 치료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밀유지권은 포기해야 한다. 이주민이라면 형기를 마치자마자 추방심사를 받는다.

W2V사건 주요 검거자들… 아동성범죄자 신상 적극 공개하는 미국 미국 언론과 머그샷 공개 웹사이트 등에 올라있는 ‘W2V’ 사건 미국 검거자들의 얼굴. 지난해 미국 법무부는 W2V 운영자 손정우 등 주요 검거자 36명의 실명과 나이, 주거지, 혐의 등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미국은 아동성범죄자의 여죄를 파악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언론 등 종합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자리나 자원봉사 등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개인 컴퓨터마저 보호관찰관이 설치한 모니터링 프로그램 감시하에 사용이 가능했다. 보호관찰관은 키 입력, 응용 프로그램의 정보, 인터넷 사용 기록, 이메일 통신 및 채팅 대화 캡처 등 컴퓨터로 가능한 모든 활동을 제한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사전통지와 감독관의 승인 없이는 인터넷 또는 사진 저장 기능을 가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도 없다.

 

신체와 거주이전의 자유 역시 강도 높게 제한됐다. 보호관찰관은 불시에 피의자의 신체 및 주거를 수색하거나 필요에 따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수행할 권한을 가진다. 허가받은 장소에서만 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사를 가려면 먼저 법원이나 당국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근무처나 회사 내 직책이 바뀌었을 때, 동거인이 바뀌었을 때 보호관찰관에게 10일 내에 통보하는 조항도 있었다. 아울러 일부 케이스에선 치료와 감시 등에 따른 모든 비용을 피고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런 조항들을 위반했을 땐 최고 10년형까지 내려질 수 있다.

미국 사회가 이처럼 철저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범죄자들의 기본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재범률이 높으며 아동피해자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미국은 1987년부터 법무부 범죄국에 ‘아동 착취 및 음란물팀’을 조직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아동성범죄를 연구하고 대응해 왔다.

김한균 박사는 “미국 사람들이 이해한 것처럼 디지털성범죄는 재범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현재 우리의 체계에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나 극히 드물게 적용되는 전자발찌 이외엔 이를 막거나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부재하다”며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 몰수처럼 디지털성범죄에도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차원의 규제가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美, 관련 범죄자 99% 평균 8년8개월 실형

 

아동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미국의 엄벌 기조는 통계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19일 취재팀이 입수한 미국 양형위원회 통계 보고서를 보면, 2018년 미국의 ‘아동포르노 범죄자(Child Pornography Offenders)’ 수는 총 141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1403명과 비교해 소폭 증가했으나 2014년 1613명보다는 13.4%가량 줄었다. 이 통계에는 아동성착취물의 ‘밀매(trafficking)’와 ‘수령(receiving)’, ‘소지(possessing)’ 죄만 포함됐고, ‘제작(production)’ 죄는 빠져 있다.

 

2018년 기준 전체 아동성착취물 범죄의 99.1%는 평균 104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으며, 밀매와 소지, 수령 혐의자가 각각 45.5%, 43.3%, 11.2%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형량은 최소 5년(49.1%), 10년(8.2%), 15년(7.4%) 순으로 많았고, 20년 이상(0.2%)도 있었다.

 

밀매 범죄자에게는 평균 136개월이 선고됐고 이 중 아동학대나 동종 전과가 있는 13.4%에게는 최소 15년형이 적용돼 평균 269개월이 선고됐다. 수령죄는 평균 105개월(전과자 2.9%·241개월), 소지는 평균 70개월(전과자 19%·138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전과가 아예 없거나 경미한 범죄 전력만 있는 경우가 76.5%로 가장 많았다. 형량은 전체의 37.2%가 양형범위 안에서, 62.8%는 바깥에서 결정됐다.

 

범죄자 대부분은 미국 국적(97.8%)의 남성(99.3%)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41세였다. 지역별로는 텍사스 남부 지역이 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버지니어 동부(51명), 미주리 서부(50명), 미주리 동부(38명) 순이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83.3%로 가장 많았고, 이어 히스패닉(9.5%), 흑인(4.2%) 순이었다.

◆회원수 128만… 아동성범죄 영상 20만건 공유

 

‘웰컴 투 비디오(W2V·Welcome To Video)’는 손정우(24)가 2015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운영한 아동성착취영상물 커뮤니티다.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을 기반으로 유료회원 4000여명을 포함, 총 회원수가 128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물 웹사이트였다. 손씨는 아예 “성인 영상물은 올리지 말라”고 공지하는 등 오로지 아동영상물만을 다뤘으며 ‘새로운 영상’을 올리면 포인트를 주는 시스템을 갖춰 범행을 부추겼다. 무려 8TB(테라바이트)에 달하는 20여만건의 영상이 모두 중복되지 않았다. 일부 회원들은 포인트를 얻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실제 성폭행하고 이를 찍어 업로드했다.

 

한번 오른 영상물은 게시자도 삭제할 수 없게 했으며 사춘기 안팎 아동의 영상이 많았다. 손씨가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우리돈 4억원에 달했다. W2V는 영국의 소아성애자 매튜 팔더(32·닉네임 ‘666데빌’)에 대한 영·미 국제공조 수사과정에서 꼬리가 밟혔다. 미국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검거자 310명 중 228명(최종 송치 235명)이 한국인이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출소를 앞둔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고 있으나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특별취재팀=김선영·이창수·박지원 기자, 박혜원 인턴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