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대사관이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6·25전쟁 당시 미8군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1892∼1992) 장군을 조명, 눈길을 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대사관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957년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같은 중요한 기관들을 설립했다”며 “그리고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한 그의 헌신을 기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글와 함께 게재한 사진 속에서 밴플리트 장군은 4성 계급장이 달린 군모를 쓴 채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어린이를 업고 있다. 밴플리트 장군 본인이 6·25전쟁 도중 함께 참전한 외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1925∼1952) 공군 대위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기에 사진이 주는 울림이 남다르다.
밴플리트 장군은 6·25전쟁 초반에 한국군이 북한군에 패한 원인이 지휘관 등 장교들의 낮은 ‘자질’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1951년부터 한국 육사에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위한 시설을 대대적으로 건립하는 등 육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를 기념해 육사에는 밴플리트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밴플리트 장군은 미8군사령관으로서 한창 전투를 지휘하던 1952년 4월 큰 아픔을 겪는다. “아버지를 돕겠다”며 신혼의 달콤함도 뒤로 한 채 참전한 외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가 작전 도중 실종된 것이다. 공군 조종사였던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는 북한 지역 철도를 파괴하는 임무 수행을 위해 출격했다가 귀환하지 못했다. 실종 당시 나이 27세였다.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미군 수색대가 행여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출동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밴플리트 장군은 수색작전 중단을 지시하며 “내 아들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전이 많다”고 말했다. 고인의 전사 60주기를 추모하는 뜻에서 2012년 6월 공군오산기지 내에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의 흉상이 건립됐다.
한국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슬픔은 밴플리트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의 전쟁 고아들, 그리고 장차 장교가 될 육사 생도들에 크나큰 애정을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57년 그가 한국의 재건을 돕고 한·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목적으로 미국 뉴욕에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설립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1995년 장군의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이 제정돼 매년 한·미 관계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어진다
미대사관은 해리 해리스 대사가 올 초 밝힌 대로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등과 더불어 6·25전쟁 발발 70주기를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한·미 동맹의 상징적 인물인 밴플리트 장군 추모에 나선 것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지연으로 주한미군의 한국인 근로자 대부분이 무급휴직에 들어간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에 모든 것을 바친) 밴플리트 장군을 기억하라’는 미국 측의 메시지가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날(19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에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미타결 상태로 지속되면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도 지장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두 나라 정상이 조속히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