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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돌던 '신변 이상설' 수면 위로… 김정은에 무슨 일이

두문불출 일주일… 金에 무슨 일이 / 北 최대 명절 집권 후 첫 불참 / 12일 최고인민회의 안나타나 / 순항 미사일 관련 보도도 안해 / 윤상현 “신변에 이상은 사실” / 金 일시적 이상 가능성 제기 / 北 매체, 김정은 동정 간략 보도 / 정부관계자 “원산에 머무는 듯” / “최고 존엄 건강 함부로 말 못해 / 동생 김여정 건재… 급변사태 희박” / 靑 “北 관련 美와 소통” 진화 나서

미국 CNN방송이 20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정보를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지난주부터 외교가에 떠돌던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김 위원장의 신변에 의문이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신변 이상설 왜 불거졌나… 태양절 불참 이례적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것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불참 이후다. 이후 북한의 최대 명절인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은 2012년 집권 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이라고 해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최근까지 군사 관련 현지지도를 계속해 왔고 지난 11일에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꾼들이 지난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4일 강원도 문천지구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보도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평소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참관하고 이를 다음날 공식 관영매체를 통해 보도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굵직한 내부행사가 잇따라 있었음에도 김 위원장이 외부에 일주일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서 20일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최근 심혈관계 시술을 받았으며, 김씨 일가의 전용 병원인 향산진료소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며칠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난주부터 국내외에서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과 관련한 여러 추측성 정보와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CNN방송이 한국 시간으로 21일 오전 소식통을 인용해 타전한 뉴스가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그간 적지 않게 제기돼온 바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도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졌고,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주일 넘게 두문불출 미국 CNN방송이 2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고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서부지구 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습격기연대 시찰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부 “특이 동향 없어”

일파만파 퍼지던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한국 등 각국 정부가 이러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이를 전제로 북한 내부에 상황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아서다. 지금까지도 김 위원장이 10일 가까이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청와대와 통일부 등 정부 당국은 “특이 동향이 없다”며 “확인할 내용도 없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이 원산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정부 관계자발로 나오기도 한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은 이날 국가정보원의 구두·대면보고를 받은 뒤 “김 위원장이 건강상 특이 징후는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CNN이 인용한 소식통 역시 ‘정보기관에 정통한 2차 소식통’일 뿐만 아니라 정보를 여전히 ‘주시하고 있다(monitoring)’고 했다.

신변 이상설이 불거진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동정을 간략하게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여든번째 생일을 맞는 김일성 훈장 수훈자이며 노력영웅인 평양시농촌경리위원회 전 고문 리신자와 김정일 상계관인이며 교수, 박사인 김책고업종합대학 연구사 리시흡에게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시었다”고 전했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상현 “심혈관 시술 맞는 듯”… 태구민 “반응 없어 더 이상”

그럼에도 일련의 상황으로 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은 남는다. 무소속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로는 일단 심혈관 질환에 대한 시술을 한 건 맞는 거 같다”며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이상설을 제기할 만큼의 징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관측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최근 부쩍 대외활동을 늘린 점도 부각된다. 다만 그의 위상 상승은 김 위원장의 신변 변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진행돼 오던 일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이 보도된 후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도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北 내부 이상 땐 폐쇄적 행보… 면밀 주시해야”

 

북·미 대화 교착과 코로나19 사태로 남북관계 역시 답보 상태인 상황에서 돌출적으로 불거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에 대해 전문가들은 21일 대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지만 민감한 상황인 만큼 지켜는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와 미 CNN이 연달아 보도한 가운데 2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김정은의 의료진 또는 주변 사람이 감히 그의 건강상태에 대해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잇단 중요 내부행사 부재를 들어 정도는 미약하더라도 건강상의 이유는 발생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전에도 당시로서는 사실이 아닌 ‘신변 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다만 태구민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최고 존엄’의 동선과 신변은 외교부장과 같은 최고위 간부들도 알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과거 김 주석이나 김 국방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돌면 문을 꽁꽁 걸어잠그곤 했다. 내부 동요를 우려해서다. 김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에도 북한은 한동안 외부에 문을 걸어잠갔다. 안 그래도 북한이 외부와 남쪽에 문을 걸어닫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이 같은 태도가 더 심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사실이라면 남북관계 진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정 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한다면 북한이 대외, 대남관계 개선을 더욱 주저하고 폐쇄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내부동향을 면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백두혈통’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 지도부가 체제유지에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날 비공식적으로 김 위원장의 신병과 관련해 특이 동향이 없다고 발표한 뒤 재차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건강이상설에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는다면 이와 관련한 억측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청와대와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소강상태를 벗어나 훈풍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대·재생산될 경우 북한의 권력구도 재편 시나리오 등에 포커스가 맞춰지며 대화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는 신중을 기하면서 대내외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상태에 대해) 한·미가 계속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CNN 보도 이후에도 양국 정부가 북한 상황에 대해 소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주형·이창훈·곽은산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