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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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매년 반복되는 ‘봄철 강풍 피해’ 대비해야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계절 중에도 생각지 못하게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있다. 바로 ‘봄’이다. 우리는 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따뜻한 햇볕과 살랑살랑 코를 간질이는 바람을 떠올린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봄은 ‘강풍의 계절’이다.

지난 3월 19일과 20일 이틀 동안 태풍과 맞먹는 강한 바람이 전국을 덮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강풍으로 철제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차량이 파손되고 시설물이 사람들을 덮쳤다.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겹치면서 전국 곳곳에서 산불 경보음이 울렸고, 울산에서는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인명사고까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막이나 컨테이너로 설치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도 비상이 걸렸고, 승차검진진료소는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김종석 기상청장

이처럼 강풍은 우리가 알고 있던 봄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봄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봄철에 웬 태풍급 강풍? 이례적이네!’ 하지만 봄철 강풍은 꾸준한 현상이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서울에 강풍특보가 발표된 날을 살펴보면 봄철이 11회로 가장 많았다. 반면 가장 매섭고 바람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겨울은 2회에 그쳤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봄마다 강한 바람이 불까? 그 이유는 해가 길어지는 봄철만의 계절적인 특징 때문이다. 춘분을 시작으로 해가 길어지면서 겨울철에 우리나라까지 세력을 넓혀 왔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빠르게 데워진다. 이 데워진 고기압은 이동성 고기압으로 변질되면서 우리나라 남쪽으로 이동하고, 그 빈자리에는 저기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남쪽의 고기압과 북쪽의 저기압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놓이게 되는데, 이른바 ‘남고북저’의 기압배치가 된다. 이러한 기압배치에서 두 기압계의 좁은 틈으로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우리나라에는 강한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봄바람이 때때로 강해지는 것은 봄의 계절적인 특징으로, 여름에 태풍이 종종 찾아오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봄철 강풍에 대한 경고는 가볍게 받아들여지고 강풍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강풍에 간판이나 지붕이 날아갔다는 소식, 크레인이 넘어졌다는 소식, 여기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손실된 재산의 소식까지도 매년 반복되어 들린다. 이런 강풍에 건조한 대기까지 더해지면 대형산불로 번지기도 한다. 2005년에 천년고찰 낙산사를 소실시킨 것 역시 봄철에 불었던 강풍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봄 날씨가 변덕이라고 하면서도, 봄철에 강하게 불었던 바람은 곧잘 잊어버린다. 매년 발생하는 강풍에 속절없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겨울 동안 기다렸던 봄을 따뜻하고 아름답게만 기억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봄바람을 ‘살랑살랑’으로만 기억하지 말고 강풍 피해에 대비해야만 한다. 옷차림이 가벼워졌다고 바람에 대한 경계까지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 따뜻한 햇볕 속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봄바람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말자. 봄바람에 꽃잎이 아닌 간판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김종석 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