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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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재검표

2000년 치러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북 청원에 출마한 오효진 자민련 후보는 신경식 한나라당 후보에게 16표 차이로 패배했다. 오 후보는 결과에 불복해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표 차이는 1표가 더 벌어진 17표로 드러났다. 오 후보는 재검표를 요청했다가 결과를 뒤집기는커녕 오히려 표차가 늘어 자존심만 구기고 말았다.

우리나라 총선 사상 최소 득표차는 3표다. 2000년 총선에서 경기 광주에 출마한 문학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박혁규 한나라당 후보에게 3표차로 패해 ‘문세표’란 별명을 얻었다. 문 후보는 당선 무효 소송으로 법정 공방까지 벌였으나 당락은 바뀌지 않았다. 법원 재검표 결과 2표차로 줄어들면서 별명은 ‘문두표’로 바뀌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인천 부평갑에서 정유섭 새누리당 후보가 문병호 국민의당 후보에게 26표 차이로 이겼는데, 문 후보 측이 재검표를 요구했다. 이때도 표차가 26표에서 23표로 수정됐을 뿐 당선인은 바뀌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어김없이 재검표를 요구하는 패배자가 등장한다. 대부분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낙선해 실낱같은 희망으로 재검표를 요청하는 경우다. 이번 21대 총선이 끝난 후에는 인천 연수을에서 2893표차로 낙선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재검표를 요구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근거 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강경 대응할 것”이라며 민 의원 주장을 일축했다.

재검표로 당락이 뒤바뀐 경우는 아주 드물다. 1992년 14대 총선 당시 서울 노원을에서 36표차로 낙선할 뻔한 민주당 임채정 후보가 재검표 끝에 민주자유당 김용채 후보를 172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적이 있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이 재현될 수 있을까. 2002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도입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당락이 뒤집힌 경우가 없다고 한다. 선관위 측은 “분류기 발달로 정확성이 향상돼 재검토를 해도 편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합당 내에서도 정진석 의원, 이준석 최고위원 등은 민 의원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이번에도 재검표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