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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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위험" 수차 경고에도… 또 ‘후진국형 人災’

이천 물류창고 화재 ‘안전불감’ / 산업안전공단, 업체 심사 과정서 / 문제점 3차례 지적 개선 요구 / 당국 감식결과 “지하2층서 발화” / 경찰, 시공사 등 4곳 압수수색

근로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의 물류창고 화재 참사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예고된 인재’처럼 보인다. 당국이 공사 현장에 화재 위험성을 수차례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에서 하던 우레탄폼 작업과 연관돼 일어난 화재라는 점에서 2008년 1월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참사와 판박이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을 부르짖고 재발 방지를 다짐해온 우리 사회는 이번에도 후진국형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30일 정부와 소방당국,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번 물류창고 신축 업체가 제출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6차례 심사하는 과정에서 화재 위험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주저앉은 유족들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30일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을 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다. 전날 화재로 38명이 숨지는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천=남정탁 기자

공단은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 ‘조건부 적정’의견을 냈고, 해당 업체는 지적사항을 시정한 후 작업을 했다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 당국이 관리감독을 보다 철저히 하고, 시공업체가 안전대책을 강화했더라면 사고를 방지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업체의 유해위험방지계획서와 관련해 당국의 2차례 서류심사와 4차례 현장확인, 후속 조치 등이 제대로 됐는지도 점검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송규 안전전문가(기술사)는 “(계획서대로 제대로 작업하는지 평가하는) 현장 확인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부적정’ 등 강력한 조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감독기관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꼬집었다.

30일 오후 경기 이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경찰과 소방당국 등 7개 기관이 참여한 이날 1차 합동감식 결과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어졌다. 다만 폭발을 일으킨 화원은 찾지 못해 1일 추가 감식을 하기로 했다. 소방당국 등은 이번 화재가 건물 지하 2층에서 우레탄 작업으로 발생한 유증기가 폭발한 데 따른 것으로 추정했다.

 

12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와 시공업체 건우㈜ 등 4개 업체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15명의 출국을 금지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시공 과정에서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이날 수원지검 조재연 검사장을 본부장으로 한 팀을 꾸려 수사 지휘에 들어갔다.

30일 오전 경기도 이천 모가체육공원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피해 가족 시설에서 시공사 관계자들이 피해 가족들에게 사죄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정부 들어 화재안전 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천 화재사고 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주문하는 한편,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이천=오상도·송동근 기자, 박현준·최형창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