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인류를 패닉에 빠트린 이후, 한국이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역체계를 구축하여 기존의 감염병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왔음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진단을 통해 감염자를 찾아내고 격리 및 치료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접촉자 파악 및 관리를 통해 지역사회 전파를 최소화하는 전략은 이른바 선진국들도 쉽게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감염병 진단능력은 왜 강한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감염병 진단 분야의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들어 공공영역에서의 감염병 진단체계의 발전과정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2년 런던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최초 발생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집단 발생이 확인되자,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의 국내 유입에 대비하여 메르스 진단키트 개발을 위한 학술용역을 발주하였고, K사에서 수주하여 기초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선행연구 덕분에 2015년 메르스 사태를 맞아 전국 보건환경연구원을 중심으로 의심환자와 접촉자들에 대한 확진검사를 강화할 수 있었으며, 긴급사용승인제도를 도입하여 민간에서의 선별검사 또한 확대할 수 있었다.
메르스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메르스 발생국가를 경유한 후 입국 시 호흡기증상이 있는 의심환자를 대상으로 24시간 신속진단체계를 유지함으로써, 연간 300건 내외의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검역, 환자 분류, 국가 격리병상 배정, 환자이송, 검체채취 및 진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역활동이 수행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감염병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서울시의 경우 보건소 감염병실무자교육을 월 1회 실시해 일선 보건소의 감염병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메르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신종감염병의 유입에 대비한 도상훈련과 현장대응훈련을 각각 연 1회씩 실시하여 감염병 국가위기 상황에서 유관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공조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한편 미비점을 도출하여 개선해 오고 있다.
메르스 이후 지속적인 감염병 대응능력을 향상, 유지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다. 현재 공공영역에서의 감염병 진단은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1차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질병관리본부는 연구개발과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한편 보건환경연구원의 역량이 미흡할 경우 지원하는 체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별 보건환경연구원의 예산, 인력, 장비로는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권역별 협의체를 구성하여 협력하고는 있지만 감염병 진단 인프라의 부족, 특히 전문인력의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신종감염병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우리에겐 낯선 감염병들도 꾸준이 유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8월 질병관리본부의 용역연구 결과, 크리미안콩고열 등 16종의 해외 감염병이 우리나라에 유입 가능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신종감염병, 해외유입감염병 및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진단 역량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공공영역에서의 감염병 대응조직은 군대와 유사하다. 평상시에는 불요불급한 자원과 인력의 낭비로 비칠 수 있으나 충분한 인프라와 전문인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붕괴되는 수준의 참상을 겪게 된다는 것을 코로나19 사태에서 많은 나라가 증명을 하고 있다.
오영희 서울특별시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