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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학생, 안 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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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그치고 우리는 다시 어떻게든 살아간다. 막상 죽으려고 하니 억울해서, 무서워서, 혹은 죽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등,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죽음으로 향하는 발길을 삶으로 돌려준 그 이유들에 대해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마다 오래전 후배가 겪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이십대의 한때 후배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에 한강으로 갔다. 봄이지만 새벽 기온은 아직 영하일 때였다. 그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천천히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후배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학생! 학생! 돌아보니 트럭에 탄 남자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동호대교가 어디예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 죽는 마당에 동호대교까지 가르쳐 줘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을 들어 멀리 보이는 다리를 가리켰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저기 가려면 어떻게 가요? 후배는 강물 속에 선 채로 길을 알려주었다. 남자가 소리쳤다. 뭐요? 너무 멀어서 안 들려요! 후배는 짜증이 났다. 그러나 남자는 끈질기고 집요했다. 할 수 없이 후배는 강물에서 걸어 나왔다. 남자의 트럭으로 다가갔다. 근데 학생, 안 추워요? 남자의 말을 듣고서야 후배는 온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두 사람은 술을 마셨다. 후배는 제 이야기를 남자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 강물 대신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남에게 털어놓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괴로운 일은 괴로운 일대로, 슬픈 일은 슬픈 일대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털어놓는 순간 괴로움은 그 무게를 던다. 들어주는 이가 있을 때 슬픔은 조금씩 휘발된다. 남에게 고민을 토로해 본 사람은 안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위로요 치유라는 사실을. 누구나 할 말이 너무 많은 세상, 들어야 할 말만 듣기에도 너무 바쁜 세상에서 작정하고 남 이야기를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잠깐의 귀 기울임이 사람을 살린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 당신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 그러므로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 짧은 메시지가 사람을 강물 밖으로 걸어 나오게 한다.

김미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