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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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호모 라피엔스의 몽상

코로나가 되살린 지구 생태계 / 인간 종 중심주의서 벗어나야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인터넷도, 자동차도, 인류도 없는 가상세계를 상상해 보자. 먼저 과학과 기술의 집약인 인공 구조물과 거대 도시는 자연에 삼켜지며 자취를 감추겠지. 오염으로 중병을 앓던 해양과 대기는 회생하고, 휴경(休耕)으로 토양은 잃어버린 생산력을 되찾겠지. 열대우림도 되살아나 지구 내륙은 온갖 생명들이 우글거리는 야생 낙원으로 바뀌겠지.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복구되면 멸종 위기 종의 개체 수가 늘고, 한반도에도 늑대나 여우, 호랑이나 표범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로 북적거리겠지. 인류만 사라진다면, 지구는 완전한 녹색 낙원으로 변할 텐데… 이런 가상세계는 몽상에서나 가능할 테다.

장석주 시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정점으로 치닫자 각 나라의 산업활동은 둔화되고, 국경 봉쇄와 함께 지역 이동이 금지되었다.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인도 펀잡주에서 대기오염으로 보이지 않던 히말라야산맥이 육안으로 관측되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의 수질이 좋아져 돌고래와 어류가 돌아왔다. 멕시코 아카풀코 해변에는 60년 만에 귀환한 발광 플랑크톤이 밤바다를 찬란하게 물들였다. 브라질의 한 해안에서 인적이 사라지자 모래 속에 있던 멸종 위기 종 바다거북의 알에서 새끼거북들이 잇따라 부화되었다. 인류가 생산활동을 멈춘 사이 온실가스가 줄고 대기오염은 사라졌다. 지구를 망가뜨리는 패악질을 그치자 지구 생태계가 제 안의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고립과 활동 감소로 지구가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되찾는 걸 목도하며 문득 위기의 실체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뻗친다.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삼킨 낯선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 자신, 즉 지구를 정복한 오만한 인간 종(種) 중심주의라는 유령에서 위기가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가이아(Gaia)’이론을 창시한 생태주의 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인류는 숫자로 보나 지구를 교란하는 정도로 보나 너무 많이 증식되어서 인류 자신의 존재조건마저 교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한다. 위기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라 지나치게 증식해 바글거리는, 바로 지구의 유해동물인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다. 다양한 생물 종의 멸종을 기반으로 자기 증식을 꾀하는 인류가 지구 재앙의 원인이라는 거다. 러브록은 이런 종말현상을 불러온 사태를 ‘파종성 영장류 질환’이라고 명명한다.

과연 인류 문명의 진보는 지속가능할까? 종교와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까? 암울하지만, 이 두 개의 물음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신종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의 구원일 수는 없다.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지구 생태계의 약탈자로 살아왔다. 세포 생물학자의 견해를 빌리자면, 인류는 “고대 박테리아 공동체가 유전자적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기술적인 장치”이거나 “원생 박테리아들이 지구에 번창하던 시대부터 나온 복잡한 네트워크의 일부”(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연히 나온 한줌밖에 안 되는 이기적 유전자의 조합이고, 고작해야 지구에 빌붙어 사는 세균이거나 유해 박테리아일 따름이다.

인류의 번성은 숙주인 지구 생태계에 만성적 감염의 과부하와 함께 대멸종의 시대를 불러올 것이다.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 약탈하는 사람)가 사라진 뒤에야 지구 생명들은 평화를 얻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는 이걸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막다른 골목으로 쫓긴 도망자처럼 절망감에 빠진다. 아, 이건 저주다!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순하게 말하자. 당장 인간 종 중심주의라는 유령 노릇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영감과 상상력을 발휘해 자연을 토벌, 착취하며 기생하는 생존방식을 멈추고, 생명애에 기초한 윤리감각 속에서 자연 생태계와의 유대감을 회복해야 한다. 과연 이건 가능한가? 아니면 영원히 가망 없는 몽상에 지나지 않은가?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