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13일 기부금 유용 논란에 휩싸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의 의혹을 놓고 공방을 이어갔다.
야권은 여권이 윤 당선인을 두둔하며 ‘친일세력의 공세’를 주장한 데 대해 “왜곡된 프레임으로 본질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하면서 정의연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은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발간한 소식지의 편집 디자인을 윤 당선인의 남편이 대표로 있는 ‘수원시민신문’이 맡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곽 의원은 “서울 마포에 있는 단체 소식지를 굳이 수원에 있는 인터넷 신문사에 맡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왜 하필 수원시민신문을 선정했는지, 정대협 소식지를 편집 디자인한 대가로 얼마를 줬는지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연은 “4개 업체 견적 중 최저금액을 제시한 수원시민신문에 맡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통합당 황규환 부대변인은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 달라며 국민이 뽑아준 윤 당선인에게 행적에 대한 진위를 밝히라는 요구를 친일파의 목소리로 매도하는 이상한 세상”이라며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주장대로) 그 뜻이 오해받지 않도록, 온전히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한국당 조수진 대변인은 “떳떳하다면 윤 당선인과 정의연이 못 밝힐 이유가 없다”며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기생충과 공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생과 공생은 구분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송갑석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국세청, 행정안전부 등 각 단위에서 (사실확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일부 인사는 이 사안을 ‘친일’ 대 ‘반일’ 프레임으로 규정하면서 윤 당선인을 적극 비호하고 나섰다. 남인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당과 보수 언론의 윤 당선인과 정의연에 대한 공격과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며 “굴욕적인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의 가장 큰 책임자인 박근혜 정권 관료들의 제보를 이용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을 비롯한 정의연에 흠집 낼 때 누가 웃고 있겠나. 일본군의 성노예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부정해온 일본 정부와 친일세력, 적폐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용진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논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 사회 모두가 지켜야 될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의연의 노력들, 그 운동의 진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많다”며 “억울해하고 답답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회계 관련) 문제는 빨리 털고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조언했다. 박 의원은 “우리 사회 모든 곳곳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상식은 어디든 회계의 불투명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기업은 물론 동네 조기축구회까지 총무와 회장이 다 책임지고 이 부분에서 명확하게 다 문서화해서 검증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정의연, 30년 투쟁 과정 오류 극복해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과 성금 사용처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 할머니는 13일 경향신문에 ‘기자회견 이후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문’을 보내 “(정의연이) 지난 30여년간 진실을 밝히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업 방식의 오류나 잘못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대구에서 기자회견 이후 논란이 커지자 엿새 만에 공식 입장을 낸 것이다.
입장문에서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활동과 관련) 성과에 대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몇 가지 말씀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정의연의 회계 불투명 논란과 관련해 “누군가를 비난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시대에 맞는 사업방식과 책임 있는 집행 과정, 그리고 투명한 공개를 통해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의연이) 새로운 사업이 아닌 필요한 사업들을 집중해 추진하고, 그 성과들을 정리해 누구나 과정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는 2015년 박근혜정부 당시 한·일 간 졸속 합의와 관련해 정부의 대민 의견 수렴과정과 그 내용, 그리고 정대협 관계자들의 정부 관계자 면담 시 대화 내용 등 관련한 내용의 조속한 공개도 요구했다. 또 일본의 범죄 인정과 사죄, 책임자 처벌과 법적 배상, 재발 방지 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등의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 할머니는 “자랑스러운 국민과 함께 만들어온 성과를 디딤돌 삼아 우리 사회 공통의 가치인 인권과 평화, 화해와 용서, 연대와 화합을 이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할머니와 20년간 함께 활동해 온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장 최봉태 변호사는 이 할머니가 정의연뿐 아니라 평소 정부의 소극적인 위안부 문제 해결 태도에 불만이 컸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정의연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2011년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후에도 별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이 할머니의 불만이 누적됐고 이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은 이번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수요집회를 끝낼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할머니가 특정인의 사주를 받아 정의연의 문제점과 수요시위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는 일각의 추측에 불쾌감을 내비쳤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날 이 할머니를 잠시 만났다는 대구지역 시민단체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누가 사주해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문은 용납할 수 없고 오롯이 나의 뜻이다’, ‘나이가 많다는 그런 걸로 (기억력 저하 등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 되게 화가 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현재 이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주변에서 입원을 권유할 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형창·김민순 기자, 대구=김덕용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