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구경도 못했어요"… 코로나 긴급 대출 두 달 넘게 감감무소식

정부 예산 부족… 은행 심사도 지연 / 정부선 “한도 낮추면 빨리 처리” / 자영업자들 “기다린게 억울해” / 당국 “별도 예산 위해 부처 협의”

 

#1. “일찍 신청한 자영업자들이 지쳐 떨어져 나가고 있어요.”

 

충북 오창에서 학원을 하는 김모(41)씨가 ‘코로나19 대출’을 받으려고 관계 기관을 찾은 건 3월4일이다. 2월24일 정부 권고로 휴원을 하고 나자 앞날이 막막했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열 시간 넘게 줄 서며 대출을 신청했지만, 두달 반이 넘은 지금 아직도 대출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보증이 나오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 4월 10일 접수한 은행 대출 심사도 하세월이다.

 

그 사이 수강생은 70%가 줄었다. 김씨는 모아둔 돈과 마이너스 통장, 소상공인 노란우산공제 대출로 겨우 버티고 있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가 승인 받은 대출 한도는 5000만원이나, 최근 은행에서 ‘대출금을 낮추면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저보다 늦게 신청한 사람들도 대출금을 받았는데 저처럼 일찍 5000만, 7000만원을 신청한 사람들은 알아서 포기하라는 건가”라며 “고생고생해서 신청한 게 억울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2. 경기 광주에서 고깃집을 하는 서모(42)씨는 2월28일 일찌감치 소상공인 확인서를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대출금을 구경도 못 했다. 그는 “지난주 은행에 전화하니 나라에서 돈이 안 나와 밀려있다더라”며 “정부 대출 하나 바라보며 직원들 나가라고도 못 하고 견디는데, 승인 금액대로 대출이 나올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4월 매출이 지난해의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며 “임대료에 생활비, 카드 이자, 식자재값, 직원 월급까지 줘야 하는데 돈 빌릴 데가 없어 카드 두세 개로 3000만원을 빌려 돌려막기를 한다”고 했다. 

 

서씨를 더 힘들 게 하는 건 막연한 기다림이다. 그는 “아예 돈이 안 나온다고 연락이라도 왔으면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로 바꿔 신청했을텐데 이제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정부 예산이 다 소진돼서 받을 수 없다는 얘기도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막막해했다. 

 

19일 서울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가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차 대출 시작됐는데 1차 5조4000억도 미집행

 

정부가 18일부터 2차 소상공인 긴급대출 접수를 시작했지만, 2·3월에 1차 대출을 신청한 자영업자들은 두 달 넘게 대출금을 받지 못해 피가 마르고 있다. 최근 정부가 ‘대출금을 낮추면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1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차 소상공인 긴급대출 예산 16조4000억원 중 이날까지 집행된 금액은 약 11조원이다. 5조4000억원이 미집행됐다. 1차 긴급대출 중 하나인 시중은행 이차보전 대출은 지난 13일까지 전체 3조5000억원 중 1조5792억원만 완료됐다.

 

‘긴급대출’이 ‘늦장대출’이 된 이유는 보증 심사에서 병목 현상이 생긴 데다 은행 심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정부 예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부실 대출을 나중에 책임지게 될까 걱정해 너그럽게 돈을 내주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예산 투입할 곳이 많아 정부에 돈이 너무 없다”며 “최근 기획재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쪽으로 돈을 몰아넣다 보니 더 지연됐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거리의 한 상점 입구에 휴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한도 낮추면 빨리 받아” 정부 안내로 혼란 가중

 

대출 집행이 늦어지자 최근 정부가 ‘금액을 낮추면 빨리 대출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면서 소상공인들의 마음고생이 더 심해졌다. 앞서 정부는 3월27일 대출 한도를 3000만원으로 낮췄다.

 

문제는 일찌감치 3000만∼7000만원을 신청한 이들에게까지 ‘1000만∼3000만원으로 낮추면 빨리 처리된다’는 안내가 나가면서 불거졌다. 3000만원 이상 보증 승인이 난 자영업자들은 이제와서 대출금이 깎인 건지 혼란스러워했다.

 

이는 실무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이다. 정부는 ‘3000만원 이하 대출을 신청했어도 1000만∼2000만원을 받으면 더 빨리 집행된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취지였으나, 일부 비대상자에게도 안내가 나갔다.

 

소식을 접한 자영업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들은 ‘지금까지 기다린 게 억울하다’, ‘더 버티면 신청액대로 나오기는 하는 거냐’며 혼란스러워했다. ‘3000만원 이상 승인’으로 인정되는 기준일이 언제인지도 분명치 않은 탓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3000만원 이상 보증서를 받은 분들은 7만명 중 1만명 가량”이라며 “이 분들에게는 개별 통보를 하지 않는 게 방침이고, 이 분들이 될 수 있으면 정해진 한도 안에서 다 받아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차 추가경정예산까지 기다리기 힘들기에 (긴급대출을 위해) 별도 예산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라며 “관계 부처들과 최대한 빨리 대출이 나갈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