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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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정대협, 공시 누락금액 '눈덩이'… 또 '회계 오류'?

정의연 국고보조금 8억여원 이어 / 정대협, 마리몬드 기부금 수억 누락 / “회계처리 오류” 해명 석연찮아

공익법인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국세청 공시 자료에 누락된 금액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 정의연의 국고보조금 8억여원에 이어 정대협도 수억원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회계처리 오류’라는 말로 책임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19일 정대협의 국세청 공시 자료와 공인회계사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분석 결과 등에 따르면 정대협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세청 공시에서 누락한 금액은 총 2억6286만원이다. 정대협은 2015년 3130만원, 2016년 7095만원, 2017년 1억891만원, 2018년 2872만원, 지난해 2298만원을 누락했다. 기부금과 국고보조금 등으로 운영되는 공익법인의 회계 자료에서 거액의 누락분이 발견된 것이다.

 

가장 액수가 큰 2017년은 기부금과 전년도 이월분 등을 합친 수입 8억9201만원에서 사업비 등으로 지출한 7억5438원과 실제 장부에 적힌 잔여 금융자산 2872만원을 뺀 액수다. 사업 시행 후 받지 못했던 돈(미수금)이 있는지도 대차대조표 등에 나와 있지 않다.

정대협이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의 기부금 6억5000만원 중 5억4000여만원도 국세청 공시 자료에서 누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마리몬드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부금 리포트’에 따르면 2013∼2019년 마리몬드는 정대협에 총 6억5422만6622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정대협의 이 기간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에는 마리몬드가 출연했다고 밝힌 기부금이 2018년 ‘출연자 및 이사 등 주요 구성원 현황 명세서’의 1억885만6800원뿐이다. 2012년 설립된 마리몬드는 소녀상 배지, 위안부 할머니 손글씨 등이 각인된 스마트폰 케이스 등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위안부 관련 단체에 기부해왔다.

앞서 정의연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가족부, 교육부, 서울시 등으로부터 국고보조금 13억4308만원을 받아 지난해 공시에만 5억3796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재해 8억여원을 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공시 자료는 2018년 기준으로, 정의연이 2016년과 2017년에는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고 적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1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빗방울에 투영되고 있다. 뉴시스

정의연은 “공모사업 시행기관의 사업을 정의연이 대신 수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정의연의 수입지출이 아니라고 판단해 포함하지 못했다”면서 2017년과 2018년에 보조금 수입을 0원으로 기재한 부분은 정의연의 회계처리 오류라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동일한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회계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19일 오후 경기 안성시 금광면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문이 굳게 닫혀있다. 뉴시스

◆코로나로 기부 줄었는데 정의연 사태까지… 중소형 공익단체들 ‘불똥 튈라’ 전전긍긍

 

“큰 단체들은 아니겠지만, 저희처럼 작은 시민단체 등 공익법인들은 다들 기부금이 줄까 걱정이죠.”

 

19일 서울 소재의 한 인권운동 단체 관계자는 최근 일고 있는 코로나19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논란으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는 “코로나19의 경우 재해구호협회 등 큰 단체로 기부가 몰리고 있고, 올해 경기가 어려워진다고 해 걱정이 크다”며 “사실상 코로나19로 신규 기부자는 이미 3월부터 끊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외벽에 반쯤 메시지가 지워진 나비모양 메모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최근 기업들의 기부는 코로나19 구호와 관련해 ‘빅3 기관’인 재해구호협회와 적십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집중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코로나19와 직접 관련이 없는 중소형 규모의 비영리단체 등 공익법인들은 한정된 기업과 시민들의 기부금이 코로나19로 몰려 여성과 인권,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기부가 줄진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내 아동을 지원하는 한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는 “해마다 기부해오던 기업들이나 고액 기부자들도 올해엔 미온적인 반응”이라며 “기부액수가 줄 경우, 지금까지 지원해 온 복지사업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미 일반인의 기부 참여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011년 36.4%에서 2019년 25.6%로 급감했다.

 

최근 불처럼 번지고 있는 정의연의 회계 투명성 논란도 부담이다. 노인 관련 복지단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 기업 관계자로부터 정의연 사태 때문에 기부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었다”며 “대부분의 단체들이 투명하게 회계를 처리하곤 있지만 정의연 사태 이후 점차 기부금의 활용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기업이나 기부자들이 많아지는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19일 오후 경기 안성시 금광면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문이 굳게 닫혀있다. 뉴시스

실제 기업의 기부는 사회 분위기나 경기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정농단 사태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기부금 집행 과정이 까다로워졌던 2018년에는 국내 500대 기업의 기부금이 전년보다 5% 이상 감소하기도 했다.

 

유지혜·이강진·이종민·김건호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