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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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아이들에 버럭”… 2040 직장맘 절반 ‘코로나 블루 주의보'

동부권센터 상담 건수 급증 / 육아 휴직 후 사직 압박·부당 전보 / 직장내 불이익 사례 접수 66% ↑ / 52% ‘스트레스 고위험군' 나타나 / 센터, 고충 해결 안전망 구축 지원

서울 마포구에서 3살·6살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이모(36·여)씨에게 올해 봄은 ‘잔인한 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린이집이 휴원에 들어갔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이씨는 어린이집 긴급보육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하루종일 마스크를 쓴 채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매일 어린이집을 보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주말이면 바깥에 나가고 싶다고 이씨를 졸랐으나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할 수 없었다. 결국 주말에는 하루종일 집 안에서 아이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이씨는 “심심하다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밤이면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안해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육아에 지친 날들이었다”며 “예전에도 육아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스트레스가 몇배로 늘었다”고 토로했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들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40대 직장맘의 절반은 ‘스트레스 고위험군’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는 3월25일∼4월15일 직장맘 24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스트레스 자가진단을 진행한 결과 45.3%(112명)가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남성 61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 고위험군이 29.5%(18명)인 것과 비교하면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훨씬 큰 셈이다. 특히 20∼40대 직장맘(196명) 중에서는 절반이 넘는 51.5%(101명)가 고위험군이었다. 42.3%(83명)는 ‘잠재군’이었고, 스트레스가 적은 ‘건강군’은 6.1%(12명)에 그쳤다.

코로나19가 집중적으로 확산한 2∼3월 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총 950건으로, 전년 동기(571건)보다 66.4% 증가했다. 상담 신청자들은 △육아휴직 후 사직 압박 △육아휴직 후 복직노동자에 대한 부당 전보 △계약 갱신 거절 위협 등의 불이익 처우 사례를 상담했다. 코로나19로 경영상태가 나빠진 회사가 많은 점이 상담 건수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 후 복귀 예정이었던 A씨는 회사로부터 전화로 사직을 권유받았다. A씨의 부서장은 “(A씨가) 사직하지 않으면 동료 2명을 해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육아휴직 중이던 기간제 근로자 B씨도 회사로부터 “사정이 어려우니 휴직기간이 끝나면 그만둬 달라”는 권고를 받았다. 회사는 퇴직금도 출산 전 근로기간만 산정해 받을 것을 강요했다.

센터는 이 같은 사례들에 대해 상담자들이 직접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법령 및 행정해석 내용을 안내하거나 회사에 법 위반 사실을 시정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또 대면 조정과 고용노동부 진정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있다. 김지희 센터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고용 위협 등에 시달리는 직장맘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