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n번방 빠진 n번방 방지법?… 텔레그램 규제 어떻게

해외 사업자는 규제 집행 힘들어 국내 업체와 '역차별' 우려도

조주빈(‘박사’), 강훈(‘부따’), 이원호(‘이기야’), 문형욱(‘갓갓’) 등이 연루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가운데 국회가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성착취물 등 불법 음란물 유통의 차단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일명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다만 ‘n번방’ 사건의 무대가 된 텔레그램은 해외 사업자라 이 법의 각종 규제조항 집행이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n번방 빠진 n번방 방지법’이란 얘기도 나온다.

 

20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n번방 방지법’이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뜻한다. 먼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 방지 조치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구속된 ‘박사’ 조주빈(왼쪽)과 ‘부따’ 강훈. 연합뉴스

이를 위반한 인터넷 사업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 사업자에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를 두도록 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상 성착취물을 신속하게 단속해 2차 피해를 막자는 취지로 도입된 이들 법안은 국민과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국회 문턱을 통과했지만, 사전 검열 및 실효성 논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n번방 방지법은 졸속”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률이 민간 사업자에 사적 검열에 대한 과도한 의무를 부과, 사업자의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등 내용이 반대 근거다.

 

정작 ‘n번방’ 사건의 무대가 된 텔레그램은 단속하기 힘들어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를 ‘차별’하는 부작용만 생길 것이란 우려도 적지않다.

‘n번방에서 감방으로’라는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n번방’ 사건 가담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날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은 텔레그램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국내에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등 국내법 적용을 위한 역외규정을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인터넷 업계에선 “해외 사업자에 대한 적용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텔레그램은 연락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법은 있으되 그 규제 집행력을 보장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위원장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실효성이 적은 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한 것이고, 이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