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사실상 막을 내린 20대 국회는 개원 첫해부터 현직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는 정치적 파동에 휩싸이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장외정치가 일상화했다.
20대 국회는 여당인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122석)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국민의당(38석)의 3개 교섭단체로 출발하면서 다당제 하의 협치 정치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출발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처리되고,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여야가 뒤바뀌면서 진영 갈등이 심화된 결과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고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이어지자, 민주당과 국민의당,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그해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재석 299명 중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는 다음해 3월 10일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는 20대 국회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2017년 5월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집권여당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여야의 대치는 더 심해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이에 동조한 ‘태극기 부대’ 등의 장외집회가 이어지면서 여야는 협치와는 담을 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여야 갈등이 폭발한 시점은 2018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어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 한 ‘4+1 협의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와 이를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현 통합당)은 국회에서 배척과 쇠망치까지 동원한 육탄전을 벌였다. 1986년 이후 33년 만에 국회의장 경호권이 발동되는 오명을 남겼다. 2012년 여야의 물리적 충돌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무력화됐다.
여야의 육탄전 끝에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은 지난해 12월 본회의 상정됐다. 하지만, 법안 상정 후에도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에 나섰고, ‘4+1 협의체’는 임시국회 회기를 2∼3일간으로 잘게 쪼개는 ‘살라미 전술’로 대응했다. 결국 법안은 한국당이 회의장을 퇴장한 채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간 무차별 고소·고발도 이어졌다. 고소·고발된 국회의원 수는 110명에 달했다. 정당별로는 한국당 60명, 더불어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3명이다. 무소속인 문희상 국회의장도 포함됐다. 이들 중 여야 의원 28명이 기소됐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1대 총선에 처음으로 적용됐지만,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후신)의 ‘꼼수’로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확대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사라졌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각각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21대 국회는 여야 양당 체제로 재편됐다.
지난해 9∼10월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조 전 장관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가족의 사모펀드 불법 투자 의혹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여야가 극렬히 대치하면서 국회에서 정치는 사라졌다. 조 전 장관 임명을 지지하는 이들은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반대하는 이들은 광화문에서 ‘조국 퇴진’을 외쳤다.
원내 정치가 실종되고 광장 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20대 국회는 본연의 입법 기능이 약화된 ‘식물 국회’로 전락했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2만4139건으로 이 중 8904건이 처리돼 처리율은 36.9%에 불과했다. 법안처리율은 17대(50.3%), 18대(44.4%), 19대(41.7%), 20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하락 곡선을 그렸다. 함량 미달 법안도 많았다. 한 의원은 모든 공공기관 개별 법안에 단순한 문구 수정을 하는 개정안을 5일간 200여건 발의하는 등 그저 발의 건수만 늘리기 위한 행태도 있었다.
문희상 국회의장비서실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3∼24일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신뢰받는 국회, 일하는 국회’ 실현 방안으로 응답자의 31.2%가 ‘회의 불출석 의원 징계 강화’를 꼽았다. 이어 ‘쪽지예산 근절로 예산심의 투명성 강화’(15.8%), ‘상시 국회 운영 및 상설소위 설치 의무화’(11.6%), ‘윤리특위 상설화 및 권한 강화’(7.2%), ‘의장의 질서유지권 강화’(6.8%),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제도 폐지’(6.0%) 순이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한동안 법정시한을 지켜왔던 예산안 처리 기록도 20대 국회에서 깨졌다. 2016년에는 법정시한인 12월2일 본회의를 열어 자정을 넘긴 3일 새벽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2017년에는 12월6일, 2018년에는 12월8일, 2019년에는 12월10일로 지각 처리됐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박상철 교수는 “20대 국회는 진영 논리가 강화돼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됐다”면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귀전·곽은산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