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차기 검찰 수장에 앉히기 위해 무리수를 남발하던 검찰 고위 간부가 불법 도박 파문으로 낙마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아베 총리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63) 도쿄고등검찰청장이 21일 코로나19 긴급사태선언 와중에 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했다는 보도로 사임했다.
20일 주간문춘에 따르면 구로카와 고검장은 1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6시간30분 동안 산케이신문 법조기자 2명, 아사히신문 법조 기자 출신의 광고부 사원 1명과 산케이신문 기자 자택에서 내기 마작을 했다. 지난 13일에도 기자들과 자정까지 내기 마작을 즐겼다. 그의 행위는 도박죄 위반에 해당한다. 정치권과 검찰 내 비판이 고조하고, 모리 마사코(森雅子) 법무상이 훈고(訓告·경고의 일종) 처분을 내리자 사표를 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태와 관련해 “총리로서 당연히 책임은 있다.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구로카와 고검장을 검사총장(검찰총장 격)에 기용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난 1월 정년퇴직 1주일을 앞둔 그의 임기를 6개월 연장했다. 검찰청법에 검사총장(만 65세) 외의 검사 정년을 63세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전대미문의 법해석 변경으로 정년을 늘렸다. 최근 검사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도 논란이 계속되는 데 따른 사후 입법의 성격이 강하다.
구로카와 고검장은 아베 총리 부부와 측근이 연루된 비리 의혹을 무마하는 데 수완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아베 총리 지인 사학에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연루 인사 10명 전원을 불기소 종결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일로 리더십에 타격을 받으며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각종 스캔들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방패를 잃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변호사·법학자 등 약 660명은 이날 벚꽃을 보는 모임 의혹과 관련해 아베 총리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아베 총리가 구로카와 고검장에 집착한 배경의 하나도 이 건으로 검찰에 고발될 경우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상부 지시가 있었다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한 전 재무성 직원의 아내가 재수사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검찰은 정년 연장을 미끼로 검찰을 장악하려는 검찰청법 개정안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수호신이 있던 시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도 핵심 포인트다.
이번 파문을 통해 검찰과 법조 기자의 검언(檢言)유착의 단면도 드러났다. 친아베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지면에 “부적절한 행위가 있으면 대처하겠다”면서 사과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지극히 부적절한 행위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