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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시·도 2조1000억 내야… 분담률 같아 가난한 곳 어려워 [뉴스 인사이드 - 지자체, 재난지원금 분담 '진땀']

서울·경기처럼 재정자립 높은 시·도까지 / 코로나 대응 과정서 재정 여력 거의 바닥 / 박원순 시장 “마른 수건 쥐어짜듯 만들어” / 이재명 지사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 지자체들 2차 추경선 세출 구조조정 보다 / 손쉬운 재난관리기금·예비비 등 활용 / 이번 넘기지만 다음 비상상황 대책 없어 / “외환위기보다 더 해… 사실상 전시 예산”
“이번엔 어떻게든 마련했지만 또 다른 비상상황이 오면 정말 대책이 없다.” 광주시 관계자는 22일 통화에서 긴급재난지원금 3972억원 중 지방 분담분 572억원(14.4%)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하소연했다. 광주만의 상황은 아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달 말 공동 촉구문에서 “장기간의 소득감소와 경기침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정부들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방재정을 투입하고 있다”며 “긴급재난지원금 전액을 국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처럼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높은 시·도 역시 장기화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여력이 거의 바닥 난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 도민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관련한 페이스북 글에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았다”고 토로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2차 추가경정예산안 발표 브리핑에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이” 긴급재난지원금 매칭분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들 긴급재난지원금 분담분 마련에 진땀

각 지방자치단체에 긴급재난지원금 매칭분 조달 비상이 걸렸다. 17개 시·도는 14조3000억원 규모 재난지원금 중 14.6%인 2조1000억원을 대야 한다. 이번 재난지원금 시·도 분담률이 지자체 재정 여건과 상관없이 일률적(소득하위 70% 지급액의 20%)으로 이뤄져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의 매칭분 조달 부담은 더 커졌다.

지난 19일 오후 세종시 한솔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가 전시성 사업이나 성과 부진 사업의 축소·폐기나 경상경비 절감과 같은 세출 구조조정보다 재난관리기금이나 예비비 활용, 지방채 발행 등에 의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에 의존하다 보면 향후 예기치 못한 재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 지방채 발행은 “지방재정 건전성 악화는 물론 임기 이후로 상환 부담을 떠넘기는 손쉬운 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세계일보가 각 시·도의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조달 방안을 파악한 결과 상대적으로 세출 구조조정 비중이 높은 지역은 서울과 부산, 대전 등에 불과했다. 서울시 긴급재난지원금 매칭분은 4700여억원이다. 서울시는 △장기미집행 공원 보상 사업(1800억원) △운행경유차 저공해사업(745억원) △동북선 경전철 건설(733억원)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239억원) 등 세출 구조조정과 순세계잉여금을 통해 대부분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전체 재난지원금 7251억원 중 1450억원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금 1856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부산시는 시의회에 △미집행투자사업 경상사업비 869억원 △재난관리기금·재해구호기금 80억원 △예비비 100억원 △지방채 발행 1300억원 등 총 2349억원의 2차 추경안을 제출했다. 대전시는 긴급재난지원금 매칭분(555억원)의 64%(350억원)를 대전국제컨벤션센터 건립 시기 조정과 기본경비 및 기타 여비, 축제행사비 축소분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다른 지자체는 대부분 약 4조원 규모 재난관리기금과 1조원 규모 재해구호기금에 의존한다. 충남도는 긴급재난지원금 분담분(822억원)을 재난관리기금에서, 인천시는 612억원 분담분을 재난관리기금(500억원)과 재해구호기금(112억원)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울산시도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을 통해 긴급재난지원금 분담분(391억원)을 100% 충당한다. 울산시 관계자는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에 감액하거나 연기한 사업은 없다”며 “이번은 괜찮았지만 다음에 비상 상황이 오면 다른 사업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서 성동구청 직원이 정부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구입하고 있다. 성동구청 제공

◆불요불급 예산 줄이기 대신 주로 손쉬운 재난기금 활용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기금 활용과 함께 불요불급한 예산 줄이기를 병행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현재까지 충북 예산은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데 가용재원이 거의 바닥난 실정이라 다음 추경부터는 지방채를 발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회 추경에서 1300억원의 지역개발기금을 활용한 강원도는 이번에 재난기금만 활용하기로 했다.

전북도와 14개 시·군은 긴급재난지원금 5048억원 중 772억원을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전북도는 재난기금에서 230억원을 가져오고, ‘글로벌 인재양성 해외연수’ 사업비(18억7000만원) 등 800여개 예산사업 삭감·축소와 부서별 사무관리비 20% 일괄 감액 등을 통해 156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재정자립도가 23.25%로 전국 꼴찌인 전남도는 세출 구조조정과 예비비를 통해 도 부담분(320억원)을 충당할 계획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추가 재원조달 여력도 낮다.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 적립액은 해당 지자체 지방세·보통세와 연동이 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앞으로 조달할 재원은 점차 줄지만 소상공인, 실직자 등 들어갈 돈은 더 많아지게 된다는 얘기다. 전북도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이렇게 사무관리비를 줄여 쓰진 않았다”며 “사실상 전시예산을 편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기금을 활용하기 전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재정 감시 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의 우지영 수석연구위원은 “지자체의 재난지원금은 지방재정의 건전성, 효율성, 책임성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라며 “재난지원금 충당을 위해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과 지방세 및 세외수입 등 체납액 징수 강화, 순세계잉여금 활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민섭 기자, 전국종합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