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박완규칼럼] 미·중 충돌, 우리 외교의 과제

코로나 책임론 이어 전방위 갈등 / “악랄한 독재” vs “제정신 아니다” / 한국에 어느 편 들지 선택 압박 / 외교 원칙 세우고 큰 그림 그려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책임을 둘러싼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한 데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을 “악랄한 독재정권”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는 “제정신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방침을 밝히자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이 홍콩에 약속한 자치권 종말의 전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홍콩시민과 함께한다”고 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미국의 일부 정치세력이 중·미관계를 신냉전으로 몰아가려 한다”고 반박했다.

박완규 논설실장

미·중이 주고받은 거친 말과 행동은 전례 없는 수위여서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조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만큼 미·중 충돌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국제질서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위신을, 중국은 신뢰를 잃었다. 신냉전이 어떤 모습이 될지를 짐작케 한다. 미국 등의 학계에서는 미·중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대만·홍콩 등을 둘러싼 갈등 양상에 비추어 우발적·제한적 무력충돌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에서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협을 해올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불렀다. 지난 500년간 지구상에서 투키디데스 함정 사례는 16건이고 이 중 12건이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했다. “중국과 미국은 지금 전쟁이라는 정면충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양측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선택들을 해나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세계가 미국·소련 중심의 양 진영으로 뚜렷하게 갈렸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한 편을 들 수 없어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편가르기를 시도한다. 동맹국들에게 반(反)중국 노선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고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추진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미 국무부는 “EPN의 핵심 가치는 자유진영 내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공급망을 확대하고 다각화하는 것”이라며 한국과 EPN 참여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대중국 전략 보고서에도 한국에 ‘중국 고립’ 동참을 압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가 신냉전의 최전선에 내몰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미·중이 모두 개입된 북한 문제에 생각이 미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미·중이 민낯을 드러내는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가 우리 외교의 당면과제가 됐다. 자칫 잘못하면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미·중 대립에 휘말려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약속도 무턱대고 반길 일은 아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먼저 평화·연대·공생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외교원칙을 정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외교의 큰 그림을 그려두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개별 상황에 대해 일관성 있고 흔들림 없는 대응을 할 수 있다. 원칙 없는 외교를 벌이다간 또다시 미·중에 휘둘리는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방역 선진국임을 입증했다. 외교에서도 치밀하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G2(주요 2개국)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G20(주요 20개국) 차원의 코로나19 대응 공조를 이끌어내면서 외교공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외교가 제 역할을 하면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완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