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를 앞둔 문희상 국회의장이 연일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과는 배치되는 소신 발언을 이어가 눈길을 끈다. 문 의장은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한 현행법에 따라 지금은 무소속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오랫동당 민주당에 몸담아왔다.
문 의장은 29일 20대 후반기(2018∼2020년) 국회의장단 퇴임식에서 “오래 마음에 뒀던 말씀을 드리겠다. 이를테면 탄원”이라며 ”작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과정에서 고소·고발당한 여야 의원이 처벌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요청해서 될 수만 있다면 사법당국에 정상을 참작해 선처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앞으로는 의원들이 스스로에게 총을 쏴서 죽이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문 의장이 언급한 ‘패스트트랙 사건’이란 지난해 국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입법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적극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들 간에 거친 몸싸움이 벌어진 일을 뜻한다.
이 사건으로 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 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 여야 당직자와 보좌진 총 3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11명은 검찰에선 약식기소를 했으나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한 경우다. 이들의 재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관할하는 서울남부지법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문 의장이 ‘탄원’, ‘정상 참작’, ‘선처’ 등 용어를 쓴 점으로 미뤄볼 때 그의 발언은 재판부를 향한 것으로 풀이된다. 행정·사법부와 더불어 3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여야 간 충돌의 불가피성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하거나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선고유예’ 등 형태로 처벌은 면제해달라는 의미다.
이는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기소된 통합당 의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민주당 구성원 다수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발상이다.
문 의장은 지난 21일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며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고 했다. 2017년 3월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이미 3년 이상 구치소 수감생활을 했고, 2018년 3월 구속된 이 전 대통령은 1년 남짓 수감생활을 한 뒤 지난해 3월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는 불구속 상태에서 대법원 상고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아직 재판 절차가 끝나지 않아 사면 대상은 아니다. 다만 대법원이 오는 8월15일 이전에 확정 판결을 내린다면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문 의장은 바로 이 점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반성도 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은 어불성설”이라며 문 의장 발언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 의장은 1992년 14대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경기 의정부에 출마, 처음 금배지를 단 이래 현재까지 6선을 기록 중이다. 김대중정부에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노무현정부에선 청와대 비서실장을 각각 지냈다.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그는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