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가혹행위로 비무장 흑인이 숨지면서 촉발된 시위가 1주일째로 접어든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군대 동원’ 등 초강수를 예고하면서 미 전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됐지만 통금 이후에도 약탈·방화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전체의 절반이 넘는 26개주에서 주 방위군이 소집되고 수도 워싱턴에는 군 전투헬기까지 투입됐다.
◆‘대통령의 교회’ 앞에서 성경 들고 ‘강경 대응’ 천명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방군 동원을 시사한 기자회견 전후 각각 주지사와의 화상회의, ‘성경 세리머니’를 갖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이날 오전 주지사, 국가안보 당국자 등과의 화상회의에서 주지사들을 향해 “여러분은 제압해야 한다. 제압하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여러분을 때려눕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지사들이 안일하게 대응해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 후엔 야간 통행금지령이 시작된 오후 7시쯤 백악관에서 걸어나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참모들과 함께 라피엣 광장 건너편의 세인트 존스 교회로 향했다. 그는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외친 뒤 참모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1816년 지어진 이후 역대 미 대통령들의 예배장소로 널리 알려진 이 교회는 전날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지하실 일부가 불탔다.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교회 방문’에 대해 폭스뉴스는 “폭력 시위에 대한 엄벌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CNN방송은 워싱턴에 첫 시위가 있던 날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 1시간가량 백악관 지하벙커로 피신했다는 자사 보도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피신’ 이미지 상쇄를 위해 ‘대통령의 교회’를 찾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야간 통금 1시간여 만인 오후 8시부터 워싱턴 거리에 나선 시위대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미 언론은 “워싱턴에서 2일 오후 8시까지 대선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투표가 진행된다”면서 “통금시간이 오후 7시에 시작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폭력 시위를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중앙지휘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게 “미 전역에 연방 자원을 추가로 파견할 계획”이라며 “주정부 및 지방정부와 공조해 폭력과 약탈 문제를 다루는 중앙지휘본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 1주 만에 사망자 속출… 플로이드 가혹행위 재연한 경찰
시위 1주일째 사망자는 물론 경찰의 과잉진압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AP통신이 경찰 발표와 트위터,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한 결과 플로이드 사망 시위로 전국에서 최소 5600명이 체포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밤 워싱턴 차이나타운에는 육군 소속 블랙호크(UH-60), 라코타헬기(UH-72)가 저공비행하며 적을 겁주는 ‘작전기동’을 실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서는 경찰과 주 방위군의 총격에 시민 1명이 숨지자 경찰서장이 해임됐다. 경찰은 “군중 해산 과정에서 누군가 총을 먼저 쐈고, 경찰과 주방위군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발표했지만, 유족은 “시위와 무관한 시민이 희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카고 교외에서도 시위 도중 총격 사건으로 2명이 숨졌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경찰이 용의자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진압하는 순간이 담긴 영상이 급속도로 퍼졌다. 경찰들이 한 남성을 바닥에 눕혀 제압하는 순간에 경찰 한 명이 체포된 남성의 목에 무릎을 대고 누르는 장면이 담겼다. 주변 사람들이 “목에서 떨어져”라고 소리쳤고, 다른 경찰이 이 경찰관의 무릎을 당겨 겨우 떼어냈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건으로 해당 경찰은 정직 처분됐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