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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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찾죠?” 먼저 물은 상인… USB형 들고 “이건 안 걸려요” [밀착취재]

용산전자상가 가보니… ‘변형카메라’ 버젓이 판매/ “작은 카메라 필요” 말에 즉각 추천/ 볼펜·열쇠고리·배터리·시계 모양 등/ 다양한 제품 꺼내 성능·가격 홍보/ 등록제 등 규제법안 3년째 낮잠/ ‘몰카범죄’ 5년 새 2배가량 늘어/ 여당 의원 “법안 보완해 다시 발의”

“‘몰카’를 찾으시는 건가요? 이쪽으로 오세요.”

지난 3일 오후 3시쯤,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상인 A씨는 “작은 카메라를 찾는다”는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상점 안쪽 한 구석에는 이미 잘 알려진 볼펜형 카메라는 물론 이동식저장장치(USB) 모양부터 열쇠고리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변형카메라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몰래카메라’ 문구 달고 영업 지난 3일 변형카메라가 유통되는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의 한 상점 입구 근처에 ‘몰래카메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USB형 카메라를 맨 처음 꺼내놓은 그는 “대부분의 제품이 렌즈가 보이긴 하는데, 이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속촬영 시간을 묻는 말에 “크기가 작은 카메라는 배터리가 작아 촬영시간이 길지 않다”고 답한 A씨는 이내 휴대용 보조배터리와 똑같이 생긴 변형카메라를 소개했다. 최근 KBS 연구동 여자화장실에서 적발된 카메라와 유사한 모델로 보였다.

또 다른 상점에서 만난 상인 B씨는 탁상시계와 주사위 모양을 한 ‘장식품용’ 변형카메라를 추천했다. 이어 사람의 동작을 감지하는 초소형 카메라를 꺼내놓은 B씨는 “담뱃갑에서 담배 몇 개를 빼고, 구멍을 뚫어 안에 카메라를 넣어 놓으면 된다”며 친절하게 사용방법까지 안내했다. 그는 USB형 카메라를 소개하면서는 “이건 안 걸린다”면서 “많이 해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업체 홈페이지에 변형카메라의 가격과 성능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는 한 상인은 “그걸 보고 원하는 걸 구매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불법 촬영에 악용될 소지가 높은 변형카메라를 규제하겠다고 밝힌 지 3년 가까이 흘렀지만 관련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 틈을 타 변형카메라는 버젓이 판매되면서 관련 범죄도 늘어나는 추세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위반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2014년 2905명에서 2018년 5497명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불법 촬영에 따른 피해가 갈수록 심화하자 정부는 2017년 9월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통해 변형카메라의 수입·판매업자에 대한 등록제 및 유통 이력 추적을 위한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등이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에는 변형카메라를 소지할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등록하도록 하는 규정 등도 포함됐다.

해당 발의안들은 2018년 11월 국회 정보통신방송법안 심사소위에서 다뤄졌으나, 일부 의원들이 카메라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가능성 및 법의 실효성 등을 지적한 이후 관련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과기부 관계자는 “당시 국회 차원의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협의했지만,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임기가 종료됐다”며 “(21대 국회에서) 산업적 측면 등에 대해 논의해 법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변형카메라는 기술기준 및 적합성 평가를 통과하면 제작·판매 등에 문제가 없고, 그 모양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한은 없다.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의 문제가 심각해진 만큼,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변형카메라 등록제 도입은)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해 일종의 ‘방어벽’을 하나 만드는 것”이라며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매자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관리하는 방안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 앞서 변형카메라 수입·판매 및 소지 등록제 등을 디지털성범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을) 보완·검토하고 있다”며 “조금 더 개선된 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