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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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빨리 보고 싶어요"…여행 가방 속 숨진 9살 아이 부검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렴" 추모 잇따라

아버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용 가방 속에 7시간 넘게 갇혔다가 숨진 초등학생 A(9)군에 대한 부검이 5일 진행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A군 시신에 있는 멍 자국 등 학대 정황에 대한 정밀분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A군 몸에서 담뱃불로 지진 것과 같은 화상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9세 의붓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계모가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부검 결과를 토대로 A군 친부의 동거녀 B(43)씨가 어느 정도의 학대를 얼마나 지속했는지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로부터 부검 결과에 대한 구두 소견을 받았으나 수사상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발생한 학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B씨와 친부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지난해 10월부터 4차례 때렸다”고 진술한 만큼 친부의 아동학대 여부에 대한 조사도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A군은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쯤 천안시 서북구 자신의 집에 있던 44㎝·세로 60㎝ 여행용 가방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의식을 찾지 못하던 A군은 이틀 만인 3일 오후 6시 30분쯤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A군을 가로 50㎝·세로 70㎝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가 A군이 가방 안에서 용변을 보자 더 작은 가방에 들어가게 하는 등 7시간 감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오전 충남 천안 백석동에 위치한 아파트 상가건물에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을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뉴스1

한편 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미뤄지는 동안 A군 담임교사가 A군이나 B씨와 10여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특이사항은 감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29일과 A군이 가방에 갇혔던 이달 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습자가진단과 건강상태 체크도 모두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누가 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문자메시지 등에서 A군은 ‘선생님 빨리 보고 싶어요’ 정도로 답했고, B씨 역시 ‘아이가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A군의 지난해 담임 교사도 4일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가혹행위 정황이나 구조요청 같은 특이한 점은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 물결,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렴”

 

A군의 학교에는 소년의 슬픈 영혼을 달랠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충남 천안 환서초등학교는 이날 오후 2시 교정에 10여㎡ 규모의 천막으로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A군은 이 학교에 2학년이던 지난해 전학 왔다.

 

학교운영위원장과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이 학교 위기관리위원회는 A군의 친모 동의를 얻어 추모공간을 설치한 뒤 누구나 자유롭게 소년의 넋을 위로할 수 있도록 했다.

5일 오후 충남 천안 백석동에서 계모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이 재학했던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어린이가 추모를 하고 있다. 뉴스1

추모공간에는 학교 측이 준비한 근조화환 2개가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조문객들이 A군의 넋을 달래는 글을 포스트잇(접착 메모지)에 적어 붙일 수 있는 칠판도 마련됐다.

 

조문에 나선 교사들은 'A군이 속박 없는 하늘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이날 등교했던 2·4학년 학생들은 점심 후 대부분 귀가해 조문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추모공간은 오는 7일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5일 오전 충남 천안 백석동에 위치한 아파트 상가건물에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을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뉴스1

A군이 살던 아파트 상가에도 추모공간이 만들어졌다.

 

주민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전날 한 상인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곳에는 조화와 함께 A군이 평소 좋아하던 과자와 음료수 등이 놓여 있고, 10여개의 추모 글이 붙어 있다.

 

천안=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