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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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벌이는 ‘감시 학교’와의 싸움

입력 : 2020-06-09 03:08:00
수정 : 2020-06-08 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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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제안으로 설치된 감시카메라 / 학생·선생님들 사생활 무차별 노출 / 학부모·언론에 폭로하는 과정 그려
타니아 로이드 치 지음/이계순 옮김/별숲/1만2000원

누가 내 모습을 훔쳤을까/타니아 로이드 치 지음/이계순 옮김/별숲/1만2000원

 

도미니카가 다니는 학교는 몇 년 전 교장 선생님이 바뀌면서 복도와 교실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됐다. 교장 선생님은 이런 보안 장치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도미니카도 처음에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 학생 게시판에 보기 민망한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미술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코를 후비는 여학생 영상이었다. 다음 날에는 바지 남대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학교를 돌아다니는 남학생 영상과 원피스가 허벅지까지 올라간 채로 책상에 앉아 있는 여선생님 모습이 올라왔다. 며칠 뒤 아무도 없는 학교 도서관에서 셔츠를 갈아입는 도미니카의 영상이 요상한 음악과 함께 스트립쇼를 하는 장면으로 악의적 편집이 돼 나돌았다.

학교에서 이 같은 영상들을 지웠지만, 이미 학생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부 퍼져나간 뒤였다. 이때 도미니카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감시 카메라가 학생들의 사생활을 침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마침 도미니카는 영국의 길거리 예술가인 뱅크시가 어느 건물의 감시 카메라 바로 밑에 ‘카메라로 감시당하는 국가’라고 크게 적은 그래피티를 본다.

곧이어 도미니카는 학교 건물에 자신만의 다람쥐 그림을 그려 학교 내 감시 체계에 대해 비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미니카의 문제 제기에 동의하는 익명의 그래피티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학교는 그림들을 지워버릴 뿐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블로그마저 폐쇄해 버린다. 이에 도미니카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학부모와 언론에 폭로하기 위한 거대 계획을 세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감시 카메라에 모습을 찍히며 살고 있다. 덕분에 각종 범죄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고, 응급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받는다. 코로나19 방역에도 감시 카메라들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사회적 장치가 됐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는 사생활 침해와 자유로운 삶의 억압, 권력에 의한 통제 기능으로도 악용될 수 있다.

소설은 사회에 미치는 감시 카메라의 장단점을 청소년들에게 친숙한 ‘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이야기한다. 감시 카메라가 보안을 위해 필요하다는 교장 선생님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도미니카의 주장은 감시 카메라의 장단점을 대변한다. 여기에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뱅크시의 실제 작품이 책에 담겨 감시 카메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이복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