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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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압박엔 입 다물고 탈북민단체에 회초리 든 정부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일 북한의 남북 연락채널 차단에 대해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며 “북한이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미 국무부가 공식 논평에서 ‘실망’이란 표현을 쓴 건 이례적이다. 북한의 최근 대남 강경 행보에는 대미 압박 성격도 담겼다고 보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 재개 등으로 ‘레드라인’을 넘어선 안 된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북한이 ‘남한은 적’이라고 규정했는데도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통일부가 “남북 통신선은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을 뿐이다. 외려 역주행을 한다. 통일부는 어제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벌여온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는 절차에 착수키로 했다. 북한에는 입을 닫고 탈북민단체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때마다 홍보에 앞장서던 청와대는 꿀 먹은 벙어리 꼴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조차 소집하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건 우리 군 당국이다. 국방부는 어제 정경두 장관 주관으로 열린 전반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있으나 마나 한 군사합의”라며 파기 운운했는데 우리 군은 긍정 평가한 것이다. “군사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도 했다.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군이 현실과 동떨어진 안이한 인식을 보인 것이다. 이런 군에 국가안보를 맡겨도 되는지 걱정이 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들고 판문점선언을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게 근본 해결책이 아닌데도 여기에 집착한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는 것도 문제지만 설사 만든다고 해도 북한은 새로운 요구 조건을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리는 대북정책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에 대응하려면 전면적인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외교안보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신뢰 회복도 시급하다. 그래야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고 국민 안전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