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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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도봉산자락의 김수영 문학관

역사적인 6월이면 더욱 생각나 / “시인의 스승은 현실” 다시 실감

사월은 아직 슬픔이 다 가시지 않았고 오월은 한이 다 삭히지 않았다면 유월은 뜨거움이 여전히 식지 않았나 한다. 그해는 유난히 숨가쁘게 흘렀고 그 속도는 유월 하고도 열흘째 되는 날 절정에 다달았다.

그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세 건이나 일어났으니, 하나는 6·10 만세운동이요, 또 하나는 ‘6월 항쟁’이요, 마지막 하나는? 내가 태어났노라 하여 듣는 사람의 실소를 자아내곤 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 내 발길은 도봉구 하고도 김수영 문학관으로 향한다. 날은 뜨겁다기보다 무덥고 습도가 높다. 비라도 한바탕 뿌리면 좋을 것을 아직 하늘은 찌푸리기만 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관악에서 한강대교 건너 강북강변도로 타고 21㎞, 외줄기 도로 끝에 김수영 문학관이 기다리고 있다. 본래 그가 출생하기는 종로구 관철동이요 성장한 곳은 종로6가요 나중에 양계장 하며 오래 산 곳은 마포 구수동이다. 문학관이 그곳에 선 것은 1968년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의 묘소가 도봉에 있기 때문이고 본래 그의 집안 사람들이 여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 토박이들이 많이 산다는 도봉이다.

문학관이 가까워 오자 길 앞으로 도봉산 봉우리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요즘 비가 많은 때라 그런지 산은 한결 선명하게 다가선다. 도봉산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시, ‘도봉’에서 그는 산을 일러,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나곤 오지 않는다”라고,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이라고 노래했다. 지금 이 적막함을 맛보려면 휴일 아닌 오늘 같은 평일의 늦은 어스름녘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수영 문학관은 코로나19 유행으로 휴관 중이다. 하지만 셔터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안에 사람이 없지 않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벨을 누른다. 사실, 나는 이 문학관에 진열된 육필 원고들 중에 꼭 보고 싶은 자료가 있다.

두어 번 이곳을 찾아 강의를 했던 인연으로 다행히 문이 열린다. 적막한 문학관이건만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 절차를 거치고서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평소 같으면 문학관 안으로 들어갈 때 김수영 시 ‘풀’의 인상을 자아내는 비바람 소리가 효과음으로 들리련만 오늘 문학관은 고요하기만 하다.

소리 없는 문학관의 맨 앞에 김수영의 삶의 과정이 압축, 정리되어 있다. 그는 1921년 11월 27일에 나서 1968년 6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랬다. 그는 이 유월의 한복판에, 이어령과의 ‘불온시’ 논쟁이 진행되던 와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불의의 죽음이 특별히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무렵에 그는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벽에 써 붙여진 김수영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왜 내가 지금 이렇게 현실에 갑갑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우리 “현실”은 지금 그가 말한 대로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어떤 “시대”는 자신에게 맞는 정신을 품고 있으되 “현실”은, 그러니까 이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는 정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그것은 우리가 옳지 못한 것을 보고, 엉뚱한 곳으로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먼 산 바라기만 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문학관 깊숙한 공간에서 빠져나오자 흐리던 구름이 비를 뿌리고 있다. 바로 이 근처에 함석헌 기념관이 있음을 생각한다. 김수영의 시대에는 그보다 스무 해 연상 함석헌 옹도 살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다섯 시 반 여름날이건만 벌써 날이 어둡다. 등불을 찾아 기념관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비 덕분에 묵지근한 더위 기운은 한결 가셨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