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의사가 신문에 ‘명화 속 여성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일이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 심형보 원장이 연재한 글은 열독률이 꽤 높았다. 심 원장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생물학적, 해부학적인 지식은 물론 그를 넘어선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의 명화 속 여성들을 바라다봤다. 또한 그림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삶과 숨은 사연을 들려줌으로서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연재 후 ‘내 안의 여자가 말을 걸다’(휴먼앤북스)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나온 단행본에서 저자는 “그림 속 그녀들에게 반해 시작한 글쓰기에 중독되어, 오늘도 그녀들과 울고 웃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 새롭게 눈뜨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출판을 담당하던 기자는 매우 인상적인 연재물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의사의 미술 에세이에 이어 이번엔 미술학도가 천문학을 다룬 이색 책이 출간돼 화제다. ‘그림 속 천문학’(아날로그)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한 김선지 미술학자가 펴낸 독특한 책이다. 역시 모 신문에 연재한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를 중심으로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림 속 천문학’은 르네상스 시기의 라파엘로와 티치아노부터 현대의 호안 미로와 조지아 오키프까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화가들이 사랑한 별과 우주의 이야기를 그들 작품을 통해 들려준다.
1부 ‘그림 위에 내려앉은 별과 행성-그리스 로마 신화 속 태양계 이야기’에서는 해와 달, 목성, 금성, 수성, 해왕성, 화성, 천왕성, 토성 등 태양계의 행성을 중심으로 각각의 행성 특징을 살펴보고 그와 연관되어 있는 신들을 묘사한 작품을 설명했다.
2부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에서는 명화 속에 나타난 천문학적 요소와 밤하늘의 별과 우주를 살아한 화가들의 삶과 그들 작품을 살펴보았다. 뒤러, 랭부르 형제 등의 작품에 숨겨져 있는 천문학 요소들은 물론 엘스하이머, 루벤스, 고흐, 미로 등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으로 그린 밤하늘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대해서 살폈다.
저자는 “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고 찬탄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별자리를 길잡이 삼아 뱃길과 발길을 재촉했고, 점성술사들은 별의 위치나 운행을 보고 인간의 운명의 점쳤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기원과 비밀을 밝히기 위해 때로는 위협에 맞서기도 했고, 예술가들은 밤하늘에 영감을 받아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별과 밤하늘, 우주에서 영감을 얻고 재해석해 또 다른 우주를 창조했다.
‘그림 속 천문학’은 천문학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책이지만 미술학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다른 전공 영역이다. 이런 의문을 해결해 준 건 책 속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란이다. 저자의 남편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천문학자였다.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 책은 미술을 전공한 김선지 작가와 천문학자 김현구 박사 부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현실이 갑갑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듯이 하늘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는 밤하늘 별들에 스며있는 옛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라. 단조롭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