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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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탄소 중립 대륙’ 박차… 1290조 붓고 법적 구속력도 부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에너지전환과 그린수소]

인류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판단 / EU 집행위 유럽 기후법안 공개 /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0’ 목표 / 韓, 에너지전환지수 전 세계 48위 / 선진국 분류 32개국서 31위 그쳐 / “도태 안 되려면 대전환 시작해야”
‘그린 뉴딜’은 향후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각국의 행보는 차이가 난다.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시대 구현을 위한 그린 뉴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온실가스 감축 및 탄소 제로(0)와 관련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지역은 유럽연합(EU)이다. EU의 행보는 선언적이거나 미래 가치적인 차원이 아니다. 여기엔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면 심각한 피해를 입어 더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여러 논란이 확산하고 있지만, ‘대전환’에 대한 전체적인 기조는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실현

15일 각계 취재를 종합하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유럽 기후법안’을 공개했다. 이 법안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EU 회원국의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30년 이후 EU 집행위는 회원국 정부에 탄소 배출 목표 달성과 관련해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이 법안은 205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는 제시했지만, 중간 단계의 목표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빠져있다는 점 때문에 환경단체 등이 반발하기도 했다. 집행위는 재검토를 거쳐 올해 말쯤 2030년까지 새로운 목표를 발표할 계획이다.

EU의 이 법안은 단순한 작업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집행위가 탄소 중립의 목표를 설정한 것은 2018년 말이었고, 당시 탄소 중립 실현과 관련한 8가지 시나리오 등 다양한 정책 목표를 담은 ‘모두를 위한 깨끗한 행성(A Clean Planet for all)’ 보고서가 발표됐다. 또 이는 앞서 파리기후협약의 이행을 위한 각국 정부, 의회의 노력에 기반한 것이었다.

EU는 지난해 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취임과 함께 ‘2050년까지 유럽을 최초의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은 ‘그린 딜’을 선보였고, 비전의 실현을 위해 지난 1월 1조유로(약 129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도 공개했다. 향후 10년간 투자계획을 담은 ‘유럽 그린 딜 투자계획(지속가능한 유럽 투자계획)’은 EU가 직접 부담하는 것 외에도 회원국과 민간 영역에서 추가로 확보하는 예산도 다뤘다. 이 막대한 예산은 화석연료와 관련된 산업이나 철강, 시멘트 등 기존 산업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를 지원하고 폴란드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부분에 대한 비중도 크다. 연구개발(R&D)이나 혁신 등뿐 아니라 그린 뉴딜의 추진으로 인해 타격을 받는 지역과 산업, 노동자를 고려한 ‘정의롭고 포용적인 전환’을 표방한 것이었다.

일찌감치 그린 뉴딜을 추진한 덕분에 EU 회원국의 대부분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부분에서 유럽 국가들의 선전이 두드러진 게 대표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에너지 전환지수(ETI) 2020’을 살펴보면 스웨덴(1위·74.2점)과 스위스(2위·73.4), 핀란드(3위·72.4) 등 유럽 선진국들이 10위권을 독식했다. WEF는 화석연료 위주인 에너지 구조를 친환경 에너지 위주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 준비 태세를 40여개 지표를 토대로 점수화해 매년 발표하고 있다.

G20(주요 20개국) 중에서는 영국(7위·69.9점)과 프랑스(8위·68.7점)만이 10위 안에 포함됐고, 대부분 저조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는 57.7점으로 조사 대상 115개국 중 48위에 그쳤다. 선진국으로 분류된 32개국 중에서는 그리스(59위·55.0점)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앞서 2018년과 2019년의 30위보다 한 걸음 후퇴한 성적이기도 했다. 주요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13위·65.9점)와 일본(22위·63.2점), 미국(32위·60.7점) 등이 우리나라보다 상위에 포진했고, 인도(74위·51.5점)와 중국(78위·50.9점) 등은 하위권에 자리했다.

◆“변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

EU의 행보는 ‘변하지 않으면 멸종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2017년 발표된 EU의 조사에 따르면 EU 시민 10명 중 9명이 기후변화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극심한 폭염이 해마다 반복됐고 북극해 얼음의 급속한 유실과 유럽 전역의 극심한 가뭄, 중·동부 유럽의 대홍수 등을 겪으며 위기의식이 비등한 것이다. EU는 2017년 한 해에만 기상 관련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2830억유로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렇듯 절박함을 바탕으로 야심 차게 추진되던 EU의 그린 뉴딜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기침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번 환경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될 때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로막았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미 2018년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며 야심 차게 추진했던 유류세 인상이 화물운수업자를 중심으로 한 ‘노란 조끼 시위’로 좌절되는 등 홍역을 치렀던 만큼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 및 증가율을 비롯해 1인당 에너지 소비, 화석연료 의존도 등 여러 부문에서 선진국 중 최하위 성적표를 받아드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그린 뉴딜을 추진하기가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연구원은 “EU 집행위에서 그린 뉴딜을 표방하고 미국 대선에서 그린 뉴딜이 논의되는 상황으로 미뤄볼 때 머지않아 우리의 주요 교역대상국들이 온실가스를 저감하며 녹색산업으로의 전환을 달성할 것”이라며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골몰해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미래 산업과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