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우리 정부는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북한이 걷어차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외교관례를 무시한 채 우리 정부의 특사파견 제안 사실을 공개하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남조선 당국이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며 “우리의 초강력 대적 보복공세에 당황망조한 남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김정은)께 특사를 보내고자 하며, 특사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 한다면서 방문시기는 가장 빠른 일자로 하며 우리 측이 희망하는 일자를 존중할 것이라고 간청해왔다”고 17일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특사를 제안한 15일은 6·15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이렇듯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전했다. 통신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남조선 집권자가 ‘위기극복용’ 특사파견 놀음에 단단히 재미를 붙이고 걸핏하면 황당무계한 제안을 들이미는데, 이제 더는 그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우리정부가 제안한 특사파견 건은 국가정보원과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 간의 ‘핫라인’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남북 간의 모든 통신 연락선을 끊겠다고 한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및 함정 간 핫라인, 판문점 채널 등 남북 간의 공식적인 연락 채널은 모두 단절됐기 때문이다. 남북간의 중대 국면 때마다 막후에서 소통을 해온 국정원과 통전부가 이번에도 움직였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이 특사제안 사실을 공개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한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대북 특사 파견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가에선 북한이 특사 제안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정식 대화 외에 특사를 통한 물밑 대화조차도 거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