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볼턴 “한국, 4·27회담서 北에 CVID 동의 압박해”

한국이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그해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동의하도록 압박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출간 예정인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의 창조물’이라고 지칭하며 2018년 6·12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사전 협의를 진행한 과정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제재 해제 전 ‘북한의 선 비핵화’를 뜻하는 ‘리비아 모델’을 요구할 정도로 대북 강경론을 고수했던 인물로, 이 책에서 당시 한국의 접근법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낙담하고 회의적으로 됐다며 북한의 시간 끌기에 말려들고 ‘위험한 양보’를 할 수 있는 데다, 회담까지 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스페인의 열정적인 춤 이름)가 한국의 창조물이었다”며 “북한이나 미국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에 더 많이 관련돼 있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미국의 근본적인 국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볼턴 전 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세 차례 워싱턴 방문을 비롯한 협의 내용,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책에 소개했다.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그는 2018년 4월12일 정 실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그달 27일 예정된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미일 균열을 유도하는 것을 피하도록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피하라고 촉구했다.

 

정 실장은 같은 달 24일 남북공동선언은 2쪽짜리일 것이라고 전했고, 비핵화에 관해 매우 구체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여서 안심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4·27 남북공동선언에는 비핵화 관련한 내용이 온건하게 들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전했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북한의 또 다른 ‘가짜 양보’라고 생각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회담 직후 북미 정상이 회담할 것을 주장했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이를 문 대통령의 ‘사진 찍기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넋이 빠진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김 위원장과 회담을 5월 중순으로 제안하기까지 했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1년 내 비핵화를 물었고, ‘그’는 동의했다고 적었다. 여기서 그는 맥락상 김 위원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칭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한국 언론에 알려달라고 말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동에서 전화 통화를 들었는데 심장마비가 온다는 농담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멸을 표현했고 볼턴 전 보좌관 역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었다고 적었다.

 

책에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 실장은 5월4일 세 번째로 워싱턴을 방문해 판문점 회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했다. 판문점 회동에서 한국은 김 위원장에게 ‘CVID’에 동의하도록 밀어붙였고, 김 위원장은 이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빅 딜’에 이르면 구체적인 것은 실무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비핵화를 완수한 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적었다. 김 위원장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결정하는 과정도 소개됐다. 김 위원장은 애초 평양이나 판문점을 희망했지만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전 보좌관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데 동의했다.

 

대신 폼페이오 장관은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가장 수용가능한 선택으로 봤지만 김 위원장은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비행기는 이 두 곳을 갈 수 없는 데다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너무 멀리 가길 원치 않았고, 이 사정을 근거로 볼턴 전 보좌관은 이 회담이 불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4월28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때 김 위원장이 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말했고, 장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적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