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유독성 식기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4년 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9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A대학병원에서 식기소독제 ‘하이크로정’이 가습기살균제로 사용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의약품 도매업체인 B업체는 하이크로정이 ‘가습기 내 세균과 실내공기, 살균, 소독 목적으로 개발된 제품’이라는 허위문구를 기재한 제품설명서 등을 A병원에 제공했다. 해당 설명서에는 “실내공기 중 세균 및 바이러스(독감·간염·에이즈 등)까지 제거해준다”, “가습기 물을 갈아줄 때 물 5∼7L에 1정을 물통에 넣어주면 된다”고도 적힌 것으로 확인됐다.
B업체 관계자는 사참위 조사에서 “당시 가습기살균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많이 판매됐고, NaDCC(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 제품이 가습기살균제로 팔리는 것을 보고 제품 용도를 변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미 사참위 가습기살균제조사2과장은 “B업체가 하이크로정을 유치원·요양병원·산후조리원에도 납품했다고 진술했다”며 “가습기살균제 용도는 아니었다고 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00병상 이상 규모인 A병원은 자체 항생제심의위원회를 거쳐 하이크로정 사용을 승인했고, 감염관리지침서에 명시해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했다고 사참위는 전했다. 4년4개월에 걸쳐 해당 병원이 사들인 하이크로정은 모두 3만7400정이다. 병원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정부의 역학조사가 진행되자 제품 사용을 중단했다.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병원 자체 지침으로 확인된 첫 사례라고 설명했지만, 해당 병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얀색의 둥근 알약 형태인 하이크로정의 본 용도는 식품용 기구의 살균과 소독이다. 식품위생법상 가습기 살균·소독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 하이크로정의 주성분은 NaDCC로, 반복 흡입 노출되면 폐에 독성 변화를 일으키는 유독물질이다. 현재까지 NaDDC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 관련 피해자는 103명이지만, 하이크로정 사용으로 인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예용 사참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많은 살균제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처럼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진 않을지 우려된다”면서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부기관은 혹시라도 과거에 유사 사례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병원의 ‘감염관리지침’을 전수 조사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