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석의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1988년 13대 국회부터 32년간 이어진 여야 협치 관행을 깨고 ‘승자 독식’의 정치를 하고 있다. 국회 협의 운영 전통도 비정상적 관행으로 치부하며 다수결 원칙을 앞세운 ‘수(數)의 정치’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7개 상임위원장을 자당 의원으로 선출한 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없이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속전속결로 심사·처리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일 예산안 조정소위원회를 열어 3차 추경안 세부 심사에 착수했다. 통합당은 지난달 30일 예결위 전체회의에 이어 이날 소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조정소위는 야당 의원 없이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의원과 박홍근, 김원이, 위성곤, 최인호 민주당 의원 5명과 정부 측 인사 등으로 가동됐다.
소위에선 일단 삭감 대상을 우선 심사했지만 이번 추경안이 민주당과 정부가 상임위 가동 전부터 20여일간 당정 협의를 통해 마련한 안인 만큼, 여당 심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30일 이뤄진 상임위 예비심사에선 평균 1∼2시간 만에 3조원이 증액됐다. 야당의 제어·견제가 없다 보니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된 35조3000억원의 추경안이 순식간에 38조원으로 늘었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 하루 전인 오는 3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 극복, ‘일하는 국회’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국회 협치 관행도 무너뜨리고 있다. 민주당이 당론 ‘1호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국회법’에는 상임위 내 법안심사소위 운영 원칙이던 ‘만장일치제’를 ‘다수결제’로 바꾸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상임위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은 모든 법안을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다. 이날 열린 민주당 정책의원총회에선 국회법을 개정해 ‘기한 내 상임위원장 등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 의장이 상임위원장 등을 추천해 본회의 선거로 정한다’는 규정도 신설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국회 원구성은 원내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의 합의를 토대로 이뤄져왔다.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과 국회법 및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등 공수처 후속법안도 처리할 태세다. 공수처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에는 요청 기한까지 위원 추천이 없으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를 지정해 위원 추천을 할 수 있게 했다.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을 여당 선호 인사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가 통제받지 않는 폭주기관차가 돼 버렸다”며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사람들이 의회 독재에 빠져들어 과반이면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다는 독선에 취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수처법을 당장 고쳐 야당의 비토권을 빼앗겠다는 게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은 “한국 정치체제가 내각제라면 여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다 가진 뒤 책임지면 되지만, 현재 여당은 대통령을 호위하고 돕는 여당이기 때문에 독식 체제로는 정부 견제·감시기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내각제는 그때그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반면 민주당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 선거까지) 2년, (총선까지) 4년 뒤에 물어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잘 반영되면 몰라도 지금까지의 민주당은 이견과 다양성이 반영되기 어려운 체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이내영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현 상황은 국회의 실패”라며 “여당은 어떻게든 야당에 더 양보해 타협 정치를 했어야 하고, 야당도 총선에서 지지를 못 받아 발생한 상황인 만큼 국회에 들어가서 견제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