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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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갈등, 혈세로 달래려는 정부… “대학은 뭐하고” 학생·납세자 불만 폭주

3차 추경 통해 ‘1인당 40만원·간접지원’ 가닥 / ‘대학 압박’ 노력 대신 세금으로 ‘20대 달래기’ 지적 나와 / 학생들, 대학·교육부 상대 ‘등록금 반환’ 집단소송… 사립대 100만원·국립대 50만원 반환 요구 / ‘세금으로 왜?’ ‘사립 초중고 학생은 왜 안 주나’ 불만도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전국 42개 대학 3500명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집단 소송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학 등록금 환불을 일부 지원하는 가운데, 환불 금액을 둘러싼 대학과 학생 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세금이 등록금 환불에 쓰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만큼 세금 투입이 결정된 뒤에도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나마 등록금을 돌려받게 된 학생들도 돌려받는 금액이 소액이라며 방관하는 대학 측을 향해 ‘반환 의무를 다하라’며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국 46개 대학 3500여명의 대학생은 지난 1일 교육부와 대학을 상대로 ‘등록금 반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사립대 학생 1인당 100만원, 국립대 학생 1인당 50만원씩 일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에 이어 연세대는 코로나19에 따른 학습권 침해 보상 등을 논의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개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2020학년도 1학기 등록금 반환운동 TF’는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발족식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이 막대한 권리 침해를 당하고 있는데 학교는 어떠한 보상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총장이 전면에 나서 1학기 등록금 반환을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국내 대학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첫 등록금 반환을 결정한 건국대는 총학생회와 두 달 협상 끝에 1학기 등록금 8.3%를 학생 1만5000명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직접 현금으로 돌려받거나 2학기 등록금에서 감면받는 방식인데 인문사회 계열은 29만 원, 공학·예체능 계열 36만 원, 수의학 계열 39만 원 정도다. 등록금 반환을 논의 중인 대학이 일부 있지만, 건국대를 제외하고 반환 방침이 결정된 대학은 아직 없다.

 

추경에 편성되는 등록금 반환 지원 예산 규모를 놓고 학생들은 적다고 반발하고 있다.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2718억원 증액 요구가 있었던 등록금 반환 관련 대학 간접지원 예산은 대학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일정 부분 증액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학교당 등록금의 10%, 1인당 40만원을 세금으로 돌려받는다. 학생들은 이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대학 측에 추가적인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 사립대 커뮤니티에는 “학교는 뭐하고 세금으로 돌려주나” “반환 여력이 있으면서도 왜 환불에 응하지 않나” 등 대학 측에 성토하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은 35조3000억원 규모였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정부안보다 1000억원 이상 축소하기로 했는데, 대학등록금 반환 관련 예산을 비롯해 일부 사업은 증액됐다. 증액사업은 △고용유지지원금 △청년패키지사업 △대학등록금 반환 관련 긴급재정 지원 △코로나19 특례보증 및 지역신용보증 지원 △인플루엔자 무상접종 확대 △방역 의료진 지원사업 등이다.

 

3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열린 ‘고려대 2020학년도 1학기 등록금 반환운동 TF 발족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등록금 일부 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3차 추경안에 3600억원 규모의 청년층 지원 예산을 추가 반영키로 한 것을 두고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 등으로 20대 지지율이 급감한 것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등록금 반환 예산을 두고는 대학 재정 실태 조사를 통해 등록금 환불을 압박하는 조처 없이 세금을 투입, 20대 불만 잠재우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불은 2학기 등록금 감면 등 대학에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 유력한데, 이는 대학이 학생들의 요구에 뒷짐을 지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학기를 앞두고 학생들의 요구에 대학이 자구책을 내놓도록 한다는 방안인데, 이 과정에서 결국 세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등록금 반환과 관련해 “재정이 어려운 대학교에 각 대학의 재정여건과 자구 노력을 전제로 교육환경 개선에만 쓰도록 부대 의견을 달아 긴급재정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 교육부는 부실한 원격수업에 따른 등록금 반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격수업 제한을 풀면서 비슷한 등록금 갈등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는 코로나19 사태로 한시적으로 풀었던 원격수업 비중 20% 제한을 완전히 없애기로 하면서 내년부터 일반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학사나 석사학위를 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코로나19 속 부실한 원격수업으로 불거진 대학과 학생 간 등록금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교육부가 이 같은 방침을 밝히면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학생들은 원격수업의 질적 개선방안 및 등록금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원격수업 제한만 푼다면 2학기 등록금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등록금 환불에 세금이 쓰이는 것을 두고 납세자의 시선도 곱지 않다. 간접 지원책이라도 결국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등록금 환불은 대학과 학생이 풀 문제인데, 등록금을 받은 대학 대신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추경 대상에 놀이학교나 사립 초중고 재학생은 빠진 것을 두고는 고액의 수업비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은 동일한데 ‘왜 대학생만 돌려주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코로나19 사태에서 등록금 환불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학 지원으로 불가피한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인당 평균 40만원 환불액을 두고 학생들의 불만이 거센 상황인 점을 고려한 납세자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환불받는 당사자가 만족 못 하고, 납세자도 불만인 지원을 왜 하느냐” “정부가 대학을 압박하지 않고, 쉽게 세금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세금이 남아도느냐” 등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 등이 지난 6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로텐더홀에 정의당 의원들이 ‘등록금 반환 추경예산 편성’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한편 지난 1일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에 따르면 2019년 회계연도 사립대 교비 회계 결산서를 확인한 결과 누적 적립금이 100억원 이상인 대학은 전체 4년제 사립대 153곳 중 87곳(56.9%)을 차지했고, 이들 대학의 총 적립금은 7조7200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등록금 반환 여력이 있는 대학이 적립금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적립금 50억원 이하인 대학에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