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에서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막아세운 택시 기사 때문에 환자 이송이 늦어져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공분이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올라온 이 사연은 청원 게시 하루만에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섰다. 경찰은 해당 내용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전날부터 시작된 이 청원에는 하루만인 이날 오전 7시 기준 27만4000여명이 참여해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지금도 빠르게 참여인원이 늘고 있다.
청원인은 “지난달 8일 오후 3시15분 어머니의 호흡이 너무 옅고 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가기 위해 사설 구급차를 불렀다”며 “병원으로 가던 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다 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구급차 기사가 택시 기사에게 ‘응급환자가 있으니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사건을 해결해드리겠다’고 했으나 택시 기사는 사건 처리를 먼저 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구급차 기사가 재차 설득했으나 택시 기사는 반말로 ‘환자는 내가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보내면 돼’, ‘저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라고도 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는 또 구급차 뒷문을 열고 환자의 사진도 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청원인은 “말다툼이 대략 10분간 이어졌고 그 사이 다른 구급차가 도착해 어머니를 모셨지만 어머니는 무더운 날씨 탓에 쇼크를 받아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하고 단 5시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밝혔다. 그는 “(택시 기사의) 처벌을 기다리고 있지만 죄목은 업무방해죄밖에 없다고 하는데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날 것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며 “긴급자동차를 막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택시 기사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김모(46)씨로 확인됐다. 김씨의 모친(80)은 폐암 4기 환자였다고 한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지난 3년간 치료받는 동안 이렇게 갑자기 건강히 악화한 적은 없었다”며 “사고 당일도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서 119가 아닌 사설 구급차를 불렀는데, 택시기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문제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해당 청원과 유튜브에 사고 순간을 담은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도 올렸다. 이 영상 밑에는 ‘택시 기사는 자신의 말대로 꼭 책임지시길’, ‘아무 관련 없는 저도 분통이 터집니다’ 같은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도 택시 기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사건이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 도로에서 발생함에 따라 강동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강동경찰서는 구급차에 탔던 김씨 모친의 사망 원인이 해당 교통사고와 관계가 있는 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사건 관계자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사진=유튜브,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