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잠을 자거나 별을 보더라도 뭐라 할 순 없지만, 먹던 찌개를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가면 어찌합니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의 고랭지 채소 산지인 '안반데기'의 주차장 화장실을 청소하던 주민 A씨는 화를 애써 참으며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이 화장실은 물이 모자라는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포세식(기포를 이용한 세척방식)으로, 음식물 등이 들어가면 막히기 일쑤다.
A씨는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많다며 화장실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 사진을 보여줬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 여행'의 바람이 불면서, 캠핑과 차박(車泊)의 바람이 거세다.
차박은 말 그대로 차 내부의 공간을 활용해 숙박하는 것으로, 짧은 여행 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세운 뒤, 차 내부에서 자며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해발 1천100m의 고지대인 안반데기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을 만끽할 수 있어 최근 몇 년 사이 '차박 성지'로 떠올랐다. 별을 관측하기 위해 밤중에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최근 많은 인파가 몰려들면서 쓰레기와 주차 등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야영과 취사는 물론 주·정차마저 금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농로에 차를 주·정차하는 바람에 농사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마곡유원지 인근 주민들도 차박족 급증으로 쓰레기가 늘어나자 CCTV까지 설치했다.
그러나 차박족들은 카메라 사각지대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한 주민은 "공공근로에 투입된 노인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지역 쓰레기봉투를 구입해 제대로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리 인원을 늘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강원도 평창군은 차박 성지로 알려진 평창읍 내 바위공원의 미화 인원을 지난 5월부터 기존 1명에서 5명으로 늘린 뒤 버려진 쓰레기가 크게 줄었다.
평창군 관계자는 "쓰레기 문제는 인원을 투입하고 쓰레기봉투를 반드시 사도록 했더니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말에는 차박 구역이 넘치면서, 주차장이나 출입이 금지된 잔디밭에 차를 대고 취사를 하는 경우가 여전하다.
평창군은 지속해서 차박족들을 계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평창군은 관내 또 다른 차박 성지인 '청옥산 육백마지기'에 아예 캠핑장 또는 차박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군은 차박족들을 비롯해 관광객이 크게 늘자 현재 '육백마지기 생태관광지 조성 타당성 조사에 대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육백마지기를 제대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어떤 방향이든 차박족들을 유치할 방침이다.
다만 현재는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만큼 차박을 자제해 줬으면 하는 것이 평창군의 바람이다.
문제는 평창군처럼 인원이나 예산을 투입할 여건이 안되는 지자체가 많다는 점이다.
평창군은 바위공원 내 기존의 텐트 캠핑장이 있어 관리자를 늘릴 수 있었다.
반면, 강릉 안반데기처럼 산꼭대기의 경우 관리자들이 대기할 공간을 두기도 어렵다. 게다가 안반데기는 강릉시 예산으로 주차장이 건설됐지만 사유지다.
결국 차박족들의 건전한 의식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 '카라반&캠핑카 차박 그룹'의 운영자 B씨는 "차박 캠퍼들은 반드시 지역 쓰레기봉투를 구매해 제대로 쓰레기 처리를 해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그룹의 또 다른 운영자 C씨는 "차박하는 사람들도 소정의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고 당당하게 이용하고 싶다"면서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윈윈하는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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