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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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빨간불'

미국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등에 따른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양국 관계의 파국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이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중국이 미국에 약속했던 에너지 수입이 5월 말까지 올해 목표치의 18%에 그쳤고, 올해 안에 목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으로 경제 활동이 둔화하면서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소비가 크게 줄었다. 

 

중국은 1단계 무역 합의에 따라 석유, 천연가스, 정제유, 석탄 등 미국의 에너지 제품 250억 달러어치를 올해에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말까지 실제 구매액은 20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이 기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구입액(109억 달러)의 18% 수준이다. 중국이 당초 약속을 지키려면 매달 3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에너지 제품을 수입해야 하지만, 중국의 에너지 수요 감소로 이를 이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WSJ이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유가 등 에너지 제품 가격이 내려간 것도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은 미국에 수입량이 아니라 수입액을 기준으로 구매 목표 달성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와는 달리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이나 공산물 구매 약속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은 올해 총 330억 달러 규모의 미 농산품을 구매하기로 약속했고, 5월까지 54억 달러어치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5월 말까지 구매해야 하는 목표치의 39%에 달한다. 그러나 농산물은 대체로 가을에 수확하기 때문에 중국이 올해 말에 미국의 농산물 수입을 확대할 수 있다고 WSJ이 전했다. 중국은 또 올해 미국산 공산품 840억 달러어치를 수입하기로 했고, 5월까지 195억 달러 규모의 공산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산품 분야 목표 이행 비율은 56%로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 경제계와 의회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지난달 22일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합의를 폐기하기로 했다고 말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부인하고, 합의 이행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미국이 홍콩 문제 등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이나 간섭을 계속하면 미·중 무역 합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WSJ이 보도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