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우리는 고통을 느낍니다.”
애플의 연례행사인 ‘WWDC(세계 개발자 콘퍼런스) 2020’에서 애플 CEO 팀 쿡이 기조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세계 개발자들과 소통을 위한 자리에서 쿡은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이 아닌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로 행사를 열었다. 그는 “교육, 경제 평등, 사법 제도의 중요한 분야에서 유색인종 공동체의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벽 도전에 1억달러(약 1200억원)를 쓰겠다”며 흑인 개발자를 위한 새로운 개발자 캠프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 인종차별 논란을 빚은 게시물을 등한시했던 페이스북이 MZ세대와 광고주의 외면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방치해 논란을 빚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스타벅스와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200여개 기업이 페이스북에서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영향으로 페이스북의 시가총액 560억달러(67조원)가 하루 만에 증발했다. 페이스북은 뒤늦게 대응책을 내놨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도마 위에 오르거나 칭찬을 받거나 기업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과거엔 ‘상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인식 속에 사회적 이슈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업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있다. 소비 잠재력이 높은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반응과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소비로 연결시키면서다.
◆브랜드 민감하지만, ‘소신’이 더 중요
1980∼1994년생인 M세대와 1995∼2004년생인 Z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기반의 소통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의 일상은 하루 종일 SNS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기업들의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6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뜻의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SNS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 운동에 동참한 직원들이 BLM가 새겨진 티셔츠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스타벅스에 대한 불매운동의 조짐까지 보이자, 스타벅스는 서둘러 지침을 철회하고 시위 문구가 적힌 티셔츠 25만장을 직원들에게 제공했다. 스타벅스가 최근 페이스북 게시물 논란과 관련해 서둘러 광고 보이콧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홍콩 반중시위와 관련해 게임사인 블리자드는 ‘시위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게이머를 징계했다가 이용자의 잇따른 탈퇴로 홍역을 치렀다. 일부 이용자들은 서비스 탈퇴를 인증하는 ‘#블리자드보이콧’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블리자드를 비판했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들도 있다. 구찌와 루이비통 등의 명품 브랜드들은 최근 미국 내 인종차별 이슈에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돌체앤가바나는 흑인인권단체에 대한 기부도 약속했다. 나이키는 브랜드 슬로건을 ‘이번 한 번만은, 하지 마라!’(For Once, Don’t do It)’로 바꿔 시위대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경쟁사인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캠페인을 SNS에서 리트윗해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비슷한 사례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항한 불매운동이 일었다. 당시 불매운동의 진원지는 SNS였다. SNS를 중심으로 불매운동 대상 리스트가 공유됐고, 혐한 감정을 조장한 유니클로나 DHC가 지탄의 대상이 됐다.
특히 MZ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에서 이런 게시물이 공유되며 불매운동에 불을 지폈다.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인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 등은 매장 내 DHC 상품을 자진 철수하기도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정성 담긴 메시지 내놔야”
사회적 현안에 기업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기저에는 MZ세대와 SNS가 있다. SNS에 익숙한 MZ세대는 사회적 이슈를 빠르게 확산하고 소비로 연결시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무엇이 아시아 Z세대를 특별하게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Z세대가 소비와 관련해 SNS 의존도가 높고 브랜드에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맥킨지는 보고서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6개국의 Z세대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한국 Z세대의 두드러진 특징은 ‘가치 소비’를 지향한다는 점이었다. 한국 Z세대 중 ‘윤리적 소비를 한다’는 응답률은 26%로 다른 아시아 5개국의 평균인 20%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자신의 가치관을 소비로 결부시키는 성향이 더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성향은 SNS에서 두드러진다. MZ세대의 소비행태가 SNS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던 당시엔 SNS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사용 후기나 여행 리뷰 등을 올린 일부 누리꾼이 지탄받기도 했다. MZ세대는 이른바 ‘플렉스’로 불리는 자기 과시적 소비 성향도 강한데, 일본제품과 관련해 이를 통제하는 분위기가 불매운동을 부추긴 측면도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SNS 밖에서도 소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IBM기업가치연구소의 조사에서 Z세대는 부모세대의 식음료(복수응답·77.0%), 가구(76.0%), 생활용품(73.0%), 여행상품(66.0%)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슈와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SNS활동을 기반으로 소비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후 Z세대가 소득이 늘고 소비시장의 주류로 성장할 경우 기존의 주류 브랜드가 침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의 조사에서 ‘주로 이용하는 의류 브랜드가 있느냐’는 질문에 M세대의 31.0%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Z세대는 16.0%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소비자들도 제품을 사면서 미리 공부하고 충분히 알아본 뒤에 구매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예전처럼 광고 마케팅만으로 소비자를 끌어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맥킨지는 Z세대가 “브랜드에 민감하면서도, 브랜드 충성도는 높지 않다”면서 “Z세대를 끌어오려면 기존의 상품 위주 광고보다 진정성과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고 분석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