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꽃다운 젊은이가 감독과 선배들의 폭행 탓에 세상을 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기에 모두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년 6개월여 전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심석희, 여자 유도선수 출신 신유용의 ‘미투’ 폭로로 체육계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후 정부가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꾸려 권고안을 내놨지만 결국 또다시 비극적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여간 7차에 걸쳐 나온 권고안이 1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장의 반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권고안이 나올 때마다 체육계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고, 심지어 일부 체육단체들은 권고안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반발이 심했던 것은 2차와 6차, 7차 권고안이다. 2차는 학생선수의 정규수업 참여, 내신·출결 등을 반영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합숙 등 장시간 훈련을 비롯한 학교 운동부 관행 개선, 지도자 역량 강화 등 학생 스포츠 환경 개선을 위한 권고를 담았고, 6차는 진천선수촌 내 인권보장 강화, 체육요원 및 경기력향상연구연금 제도 개편 등 엘리트 체육 환경개선안을 포함했다. 여기에 7차에서는 대한체육회와 대한민국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를 통해 올림픽 중심의 성적 지상주의 탈피를 도모했다.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해 운동 이외 삶의 대안을 찾지 못하는 선수들과 폭력과 폭언 등을 통해 이들을 쥐어짜 성적을 만드는 훈련 관행 등 최 선수의 비극을 만든 모든 요소의 해소책이 이미 제시돼 있었던 셈이다.
당시 가장 많이 나왔던 반발 논리는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 2차 발표 뒤 반대 성명을 주도했던 박노준 국가대표선수협회 회장은 당시 “단체종목은 합숙을 하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고 권고안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진천선수촌 등 엘리트 체육 운영 방침을 담은 6차 권고안도 체육계 안팎의 반발에 직면했다. 7차는 KOC 분리로 권한이 대폭 축소될 대한체육회가 곧바로 반대 주장을 들고 나왔다. 결국, 이런 극심한 반발 속에 권고안은 이번 최 선수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잊혀져 갔다.
문제는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이런 구시대적 관행부터 먼저 뿌리 뽑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최 선수 사건 이후 나오는 대안들이 권고안의 ‘재탕’ 수준인 것도 이런 관행 철폐가 체육계 문화를 바꾸는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번이 악습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면서 다시 한번 개혁 의지를 내놓은 가운데 이번엔 저항을 뚫고 구조 개혁에 성공할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