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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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원순 유서엔 “죄송, 감사, 모두 안녕”… ‘서울특별시장(葬) 반대’ 청원은 30만 돌파

9일 숨진 박원순 서울시장 유언장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 /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 언급은 없어 / 온라인상에선 갑론을박, “시민장 취소하라” 청원까지 등장 /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인 훌륭한 삶 다시금 확인하지만… 조문은 가지 않을 것” / 유족 호소 “고인에 대한 일방의 주장이나 근거없는 내용 유포 삼가달라”

 

지난 9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사진)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게시된 지 15시간 만에 30만 동의를 돌파했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한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하루도 안 돼 20만 동의를 돌파한 데 이어, 11일 오전 6시 기준 약 32만 동의를 얻었다. 청원에 20만 이상의 동의가 달리면 청와대가 답변해야 해야 한다.

 

해당 글에서 청원인은 “박원순씨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라면서 “떳떳한 죽음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라며 “(박원순 시장 장례는)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이 숨지기 전인 9일 오전 공관을 나오기 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언장은 다음날인 10일 공개됐다.

 

고한석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유족의 뜻에 따라 10일 박 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취재진에 유언장을 공개했다.

 

박 시장은 유언장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 유서. 연합뉴스

 

이 유언장은 전날 공관을 정리하던 주무관이 박 시장의 서재 책상 위에서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의 유언이 공개되자 일각에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박 시장의 전 비서로 알려진 서울시 직원 A씨는 지난 8일 박 시장을 성추행 및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 여성은 경찰에 “2016년 이후 박 시장이 집무실에서 제 몸을 만지거나, 집무실 내부에 있는 침실에 들어오길 요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박 시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사진을 보내왔고, 자신의 사진도 보낼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박 시장에 거듭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수년간 성적 수치심을 느껴야 했고 최근 사직한 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평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해온 박 시장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셈이 된다. 때문에 이 사건이 박 시장의 사망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단 추측이 나온다.

 

 

특히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 시절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맡아 수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승소를 끌어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 이후 온라인상에는 “박 시장의 업적은 업적대로 기리고 애도해야 한다”는 쪽과 “성범죄자에게 애도라니 말도 안 된다. 국민 세금으로 치르는 서울특별시장(장)을 취소해야 한다”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류호정(사진) 정의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박원순 시장의 빈소를)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박 시장을 고소한 A씨를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인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한다”면서도, 피해자를 향해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네 잘못이 아니야’는 영화 ‘굿 윌 헌팅’ 속 등장인물 ‘숀’이 주인공 ‘윌’에게 전한 말”이라며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다시 회자되었던 이 말을, 닿을지 모르는 공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전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온라인상에는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가 퍼지면서 유족이 ‘법적대응’을 경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미란 박원순 시장 유족 대리인은 이날 호소문을 발표하고 “갑작스러운 비보에 유족과 서울시 직원,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라면서 “고인에 대한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거나 근거 없는 내용을 유포하는 일을 삼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사실과 무관하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거듭될 경우 법적으로 엄중히 대처할 것을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박 시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유족을 대신해 당부 말씀을 드린다”라며 “지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 악의적인 출처 불명의 글이 퍼지고 있어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 유족들이 더욱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부디 이런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