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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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고소인 찾아라” 2차 가해 우려 확산

온라인서 신상털기 이어져 / “정보공개 명백한 범죄행위” / “朴 맑은분” “삶 포기할 만큼 엄격” / 여권인사들 추모메시지 논란 / 여기자協 “피해호소인 보호 우선”
김웅 의원(왼쪽 세 번째)을 비롯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제가 그분(피해자) 참교육 시켜줄 겁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 박 시장을 고소한 피해 여성을 찾겠다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박 시장 사망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기’가 이뤄지면서 ‘2차 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지난 10일 오전 한 인터넷 게시판에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을 색출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 작성자는 시장 비서실 근무자 관련 자료를 언급하며 박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찾고 있다고 적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박 시장의 전 비서라는 사진이 떠돌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변호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행위 자체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실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물론이고,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밝히는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도 위반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성추행 의혹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 인사들은 박 시장을 조문하면서 “맑은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박범계 의원)거나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한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면서도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페이스북 캡쳐

특히 역사학자인 전우용씨는 12일 트위터에 “그가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면서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 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조문이나 애도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지만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며 “성폭력에는 이념이 없다. 사실관계를 밝혀 가해자는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여기자협회도 성명에서 “고인이 서울시 직원이었던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는 사실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할 사회적 책임이 고인을 애도하는 분위기에 묻혀선 안 된다”며 “현행 법체계는 이번 의혹 사건에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피해호소인이 무차별적 2차 가해에 노출된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공인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국민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며 “피해호소인의 고통을 무시하며 고인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정치인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공적 언급에 강력한 유감을 밝힌다”고 지적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