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가 13일 처음으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저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이라면서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박 시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날 오후 A씨 측 변호인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런 내용이 담긴 A씨의 서신을 대독했다. A씨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며 이 같이 호소했다. A씨는 수 년이 흐른 뒤 경찰에 고소를 한 이유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미련했다, 너무 후회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그때 저는 소리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며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고 부연했다.
A씨는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며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 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며 “안전한 법정에서 그 분(박 시장)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A씨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는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박 시장)이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놨다”며 “죽음이란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며 “그래서 너무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A씨는 “아직도 (박 시장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남겼다. 박 시장은 지난 9일 실종된 뒤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고소를) 많이 망설였다”며 “그러나 50만명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고 털어놨다. 이는 박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러진 데 대한 비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추행 피소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시장의 장례를 세금이 쓰이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단숨에 참여 인원 50만명을 돌파한 바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