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문 기자
“최저임금 인상률만 보면 역대 최저다. 다만 최저임금 규모가 커졌다. 예전에는 야구공이었는데 지금은 농구공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정부 측 공익위원 중 간사를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저인 1.5%로 결정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에 따라 같은 금액이 인상돼도 인상률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액은 130원인데, 같은 금액이 인상된 1991년도에는 인상률이 18.8%에 달했다.
◆‘극과 극’ 인상률이 논란 키웠다
문재인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극과 극을 달렸다. 2018∼2019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선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2020∼2021년도 심의에선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 출범 당시 노동존중사회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지만, 현 정부 4년간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7.7%)과 박근혜정부(2014∼2017년) 연평균 인상률(7.4%)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널뛰는 인상률은 오히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을 키웠다. 인상률 급가속 기간인 2018∼2019년도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심으로 불만이 확산했고,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 이른바 ‘을과 을’ 갈등구도가 형성됐다.
급제동 기간엔 노정 갈등이 심화했다.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풀었고, 노사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영계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요청을 받아들였다. 2020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는 역대 세 번째로 낮은 2.87% 인상률을 결정한 데 이어 이번 심의에서 ‘1%대 인상률’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현 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도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당초 공약은 올해까지 1만원으로 올리는 것이었지만, 지난해 심의에서 이미 좌초됐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려면 내년 심의에서 인상률이 14.7%가 돼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최저임금 공약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며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임금 작아도 일자리 유지 먼저”
역대 최저 인상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고용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권 교수는 이날 최저임금 의결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에서 소득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임금을 적게 받더라도 우선은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권 교수는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일자리 감축 효과, 그것이 노동자 생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저 인상률 결정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는 코로나19 정국 이후 ‘일자리 유지’를 핵심 대응책으로 내세워 왔다.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기업이 가장 먼저 조정하는 비용이 노동력인데, 특히 코로나19 정국에선 특수고용노동자(특고)·영세 자영업자·프리랜서 등 고용 취약계층의 타격이 컸다. 정규직이 대량 해고됐던 국제통화기구(IMF) 외환위기 정국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번 심의를 주도한 공익위원들도 이 같은 부분에 주목해 IMF 당시 인상률(1998년 9월∼1999년 8월, 2.7%)보다 1.2%포인트 낮은 1.5% 인상률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이 고용시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해서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이번에 의결된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최대 408만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규모는 최대 19.8%에 이른다.
◆밤샘협상 ‘막전막후’
이번 최저임금 심의도 막바지까지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전년보다 2주 늦은 6월 중순에서야 첫 전원회의를 가진 최저임금위는 법정 심의기한인 지난달 29일을 넘긴 지난 1일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제출했다. 노동계 1만원(+16.4%), 경영계 8410원(-2.1%)으로 시작한 협상은 전날 2차 수정안 제출에서 경영계가 또다시 ‘-1.0%’의 마이너스안을 제시하면서 노동계의 반발로 파행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 위원 4명은 경영계의 연이은 삭감안 제출에 반발해 전날 8차 회의부터 심의를 거부했다.
8차 전원회의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노사는 밤샘협상으로 날을 넘겨 9차 회의로 차수가 자동 변경됐다. 노사 인식 간극을 확인한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으로 ‘8620(+0.35%)∼9110원(+6.1%)’을 제시했고, 노사는 각각 구간 상한선과 하한선을 2차 수정안으로 제출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공익위원들은 8720원(+1.5%)을 공익위원안으로 제출해 표결에 부쳤다. 인상률에 반발해 한노총 근로자위원 5명은 전원 퇴장했고, ‘삭감 혹은 동결’ 입장을 고수했던 사용자위원 측에서도 2명이 퇴장해 총 17명(공익위원 9명, 사용자위원 7명)이 남았다. 공익위원안은 그대로 표결에 부쳐졌고, 찬성 9명에 반대 7명으로 가결됐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