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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나도 모르는 새 가려진 ‘번호판’…억울했지만 과태료 40만원을 냈다

지난달 16~18일, 친구와 제주도 다녀온 권모씨 / 집에 돌아온 후, 제주시에서 날아온 ‘과태료 통지서’ 받아 / 누군가 신고한 사진에는 ‘포스트잇‘ 추정 종이로 번호판 가려진 채 주행 중인 권씨의 렌트차량 담겨 / 권씨 “여행 가서 누가 번호판을 가리느냐” 억울함 호소 / 이의신청서도 소용없이 과태료 납부 / 불특정 차량 노린 ‘고의 범죄’ 생각도
지난달 중순,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온 권모(60)씨는 자신의 렌트차량 번호판 일부가 가려졌다며, 자동차관리법을 위반했으니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확인하니 누군가 번호판 숫자 일부를 ‘포스트잇’으로 추정되는 종이(노란 네모)로 가린 거였다. 그는 “너무 억울하다”며 “난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씨 본인 제공

 

“너무 억울하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이제 와서 결과를 바꿀 방법이 없어요….”

 

대구에 사는 권모(60)씨는 14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통화 내내 들으면서도 좀처럼 믿기 어려웠던 일은 지난달 중순 무렵 일어났다.

 

권씨가 제주시로부터 받은 과태료 통지서 일부. 과태료 부과 사유가 ‘번호판 식별 곤란’(빨간 밑줄)으로 되어 있다. 권씨 본인 제공

 

◆렌트차량 번호판이 가려졌다고…뜻밖의 ‘과태료 통지서’

 

15일 제주시 등에 따르면 친구와 함께 지난달 16~18일, 2박3일간 제주도에 다녀온 권씨는 집에 돌아온 지 며칠 후, 제주시청 명의의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

 

과태료라니 의아했던 권씨는 통지서를 보고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2박3일 일정 중 중간 날이었던 6월17일,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뒷 번호판 숫자 일부가 가려진 채 달리는 권씨의 렌트차량이 신고됐다며, 그가 자동차관리법 제10조 5항을 위반했으므로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조항은 “누구든지 등록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되고, 그런 자동차를 운전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며, 같은법 시행령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

 

인근 차량 운전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캡처해 신고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에는 번호판 일부 숫자를 ‘포스트잇’으로 추정되는 종이로 가린 채 주행하는 렌트차량이 담겨 있었다.

 

지난달 22일 발송된 이 통지서에는 7월13일까지 과태료를 자진 납부할 경우, 전체 액수의 20%를 감면한다는 안내사항도 적혔다.

 

권씨는 “우리는 종이로 번호판을 가린 적이 없다”며 “누가 여행지에서 일부러 번호판을 가리고 운전하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량을 빌린 업체에 이전 탑승자의 흔적인지 문의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인데…위법행위 없었다는 ‘증거’를 찾아야 했다

 

금세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던 권씨 앞에는 첩첩산중뿐이었다.

 

먼저, 차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몰래 번호판을 가렸다고 생각해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하려 했지만, 이 같은 행위는 ‘재물손괴’가 아니므로 형사사건이 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차로 방문한 장소의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대구에서 제주까지 다시 날아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상을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억울함을 풀려면 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이는 길이 있었는데,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일이 너무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그를 좌절시켰다.

 

권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위법행위’가 접수된 국민신문고에 “신고자를 알고 싶다”고 문의했지만, 개인정보여서 신고자 사항을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스스로 확보해야 하니 이보다 답답하고 황당한 일도 없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한 사이 시간은 흘렀고, 결국 권씨와 친구는 반씩 돈을 모아 과태료 자진 납부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13일에 40만원을 냈다.

 

권씨가 작성했던 ‘과태료 이의신청서’의 일부. 그는 이의신청서에서 “하지도 않았고 보지도 못한 일이 제가 책임질 일로 돌아오니 황당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권씨 본인 제공

 

◆불특정 차량 노린 범죄 의심도…“스스로 확인 못한 날 자책할 뿐”

 

아직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렌트차량 번호판에 이러한 짓을 했는지 권씨는 알 길이 없다.

 

그는 통화에서 “누가 차에 포스트잇을 붙였는지 알아내려 제주도로 가 일일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며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사실상 백기를 들고 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주도에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은, 불현듯 관광지의 불특정 차량을 상대로 저지르는 ‘고의 범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러 권씨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섭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도 같은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일을 알리고 싶었다”며 “어디에서도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이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과태료 통지서를 받아든 순간 손이 떨리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도 않았고 보지도 못한 일이 제가 책임질 일로 돌아오니 정말 황당합니다….”

 

권씨는 이 같은 내용의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제주시에 제출했지만, 일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는 통화 말미 “짐을 호텔에 둔 상태여서 트렁크를 열 일이 없었다”며 “여행 내내 비가 와 재빨리 타고 내리기만 했다”고 차를 유심히 살피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