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
◆‘너흰 만들어, 우린 쓸게’… 온실가스 감축 ‘환경 부정의’
우리나라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단 한 차례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국제 환경의 변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를 키워야 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정부는 오는 14일 새로운 길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일보는 이 같은 경제·사회 구조의 대대적인 전환 과정에서 놓인 위기(리스크)와 해결 방안을 짚어보는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우선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각종 통계 수치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229개 지방자치단체의 기후변화 위험도를 측정했다. 이른바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다. 탄소배출 감축 등으로 인한 지자체의 경제·산업적 위험도를 지표화하는 것은 국내 언론 가운데 최초다.
기후변화 문제는 크게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으로 구분된다. 기후위기 지도도 두 부분으로 나눠 작성했다. 분석 결과 탄소배출 감축 리스크(위험)가 가장 큰 지자체는 충남 당진으로 나타났다. 충남 보령과 태안이 뒤를 이었다. 리스크가 높은 상위 10곳 중 5곳이 충남이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절반(30기)이 몰려 있는 게 큰 이유였다.
◆당진 위기지역 1위… 충남에 몰려
감축 리스크는 △지역내총생산(GRDP)당 배출량과 △지역 내 주요 배출기업 감축 의무 △지역 내 좌초위기산업 고용인구 △재정자립도를 이용했다.
GRDP당 배출량은 한 지역의 부가가치가 온실가스 배출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충남이 압도적인 1위였다. 게다가 당진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로드맵’에 따라 기업들이 10년 동안 줄여야 할 온실가스양도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보령과 태안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후위기 인터렉티브 지도는 세계일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200710512185
충남도는 205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충남 에너지전환 비전 2050’을 2018년 발표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 충남이 풀어야 할 숙제는 비전처럼 간명하지 않다.
지난달 충남연구원이 발표한 ‘노후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와 친환경에너지 전환 타당성 연구’를 보면 발전사업을 포함한 전기사업은 당진과 보령, 태안, 서천의 특화산업이다.
보통 입지계수(LQ)가 1보다 크면 지역 특화산업이라고 보는데 보령의 전기사업 LQ(종사자 기준)는 16.52, 태안은 19.14나 된다. 발전소가 이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다. 발전소가 있으면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지방세 확보 같은 일반적인 경제효과 외에도 지역자원시설세(당진·보령·태안 각 70억원가량)를 받을 수 있다. 발전소 반경 5㎞ 이내 마을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연간 60억∼70억원대의 지원금도 받는다.
충남도에서 탈석탄은 지역 경제의 뼈대를 바꾸는 일이다. 발전소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8000여명의 일자리, 부가가치, 각종 지원금을 다른 무언가로 갈아 끼우는 대수술이다. 울산 동구와 경남 거제는 좌초위기 산업에 고용된 인구가 많아 고위험 상위 10곳에 포함됐다. 좌초위기 산업은 석유화학, 자동차, 플라스틱, 조선처럼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지금 상태로 지속가능하기 힘든 산업을 말한다. 울산 동구에는 현대중공업이, 거제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다. 지역경제의 축이었던 산업이 기후위기 시대에는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 된 셈이다.
전남 광양·여수, 충남 아산·서산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은 제철소와 석유화학·정제기업, 자동차 공장 등으로 지역 경제를 지탱해왔지만, 앞으로 이들 기업이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다. 더구나 고위험 지자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2019년 기준 44.9%)의 절반도 안 돼 산업·일자리 전환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전력 사용 많은 서울·경기는 안정권… ‘환경 부정의’
이에 반해 감축 리스크가 낮은 10위권에는 서울과 경기도가 포진했다. 그중에서도 ‘부자 동네’로 꼽히는 지역들은 위험과는 거리가 멀어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가 나란히 감축 리스크 하위 1·2위를 차지했고, 용산구(5위)와 송파구(7위)도 안정권에 들었다. 경기도에선 성남시가 6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공통된 과제 앞에도 ‘환경 부정의’(environmental injustice)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너지통계 연보를 보면 전국에서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다. 전국에서 생산된 전력의 23%가 경기도에서 사용된다. 서울은 3위다. 2위는 충남인데 대형 사업장이 많아서다. 충남에 국한된 전력 수요가 아니라 전국에 공급할 물건을 만들어내라 쓰는 전력이 많다는 뜻이다.
오로지 해당 지역민을 위한 사용량이라 할 수 있는 가정·상업용 전력만 놓고 보면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경기 두 곳에서 44%를 쓴다. 반면, 두 지역이 만들어내는 전력량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자동차나 플라스틱 등 각종 재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도 서울·경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리스크는 이 두 곳에서 가장 낮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 후진국으로 오염산업을 넘긴 뒤 말끔한 최종재만 수입해온 것처럼 국내에서도 ‘오염산업 떠넘기기’가 벌어진 결과다.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기후환경에너지학)는 “그린 뉴딜로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할 경우 감축 리스크가 큰 지역부터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감축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 폭을 줄이자는 대응 방식이라면, 적응은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된 온난화의 영향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춘다.
기후위기 적응 리스크는 △인구당 의료기관 수 △2030년 예상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 △온도 상승 폭 △열대야 일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적응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는 연제구(리스크 1위)를 포함한 부산 5개 자치구(영도·남·서·동구)가 10위권에 들었다. 적응리스크는 지역 사회 인프라가 온난화 리스크를 높이거나 낮추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대구 중구와 서구는 기온 상승폭과 열대야 일수, 고령인구 비율이 비슷하지만 인구당 의료기관 수에서 4배나 차이가 났다. 그 결과 대구 서구는 위험도가 큰 9위에 올랐지만, 중구는 하위권에 남을 수 있었다.
서울 강서구와 강원 춘천시는 고령인구 비율 추계치와 기온 상승폭, 인구당 의료기관 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대신 예상 열대야 일수가 강서 19.8일, 춘천 1.0일로 크게 벌어졌다. 열대야는 도시화와 관계 깊다. 길거리를 덮은 아스팔트는 도시 안에 열을 붙들어두는 주범이다. 아스팔트로 달궈진 공기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막혀 밤이 돼도 외부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감축과 달리 적응 부문에서는 양천·영등포·송파구 등 서울 지자체 여러 곳이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기후대기안전 본부장은 “기후변화 영향은 기상변수 외에 사회경제적으로 결정되는 노출변수로도 결정된다”며 “고령자, 저소득층, 야외노동자, 1인가구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229개 기초단체 자료 분석 감축·적응 부문 지표 제작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는 감축 부문과 적응 부문 각 4개 지표로 제작됐다. 지표 모두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자료를 이용했으나 감축 부문 ‘지역내총생산(GRDP)당 배출량’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의 한계로 각 시·도를 한 묶음으로 봤다.
‘지역 내 주요 배출기업 감축 의무’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5대 업종(발전·에너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의 2018년 배출량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로드맵’에서 제시하는 2030년 배출 목표를 토대로 감축 의무량을 구하고 이를 사업장 소재지별로 집계했다. 단, 사업장별 배출량은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상 비공개 자료여서 사업장이 두 군데 이상일 경우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생산실적에 비례해 배분했다.
‘지역 내 좌초위기산업 고용인구’는 탄소 집약도가 높은 석유화학 및 정제, 자동차, 플라스틱, 시멘트, 철강, 조선과 관련된 산업을 한국표준산업분류 소분류에서 골라 시군구별 고용인구를 정리했다.
적응 부문의 ‘2030년 고령층(65세 이상) 인구비율’과 ‘인구당 의료기관 수’는 환경부의 ‘229개 지자체 폭염위험도’(2019년)와 ‘폭염 취약성 지수’(2018년)를 참고해 선정했다.
2030년 평년 대비 평균기온 상승폭과 열대야 일수는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가운데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RCP 8.5) 전망치를 골랐다.
지표마다 단위가 제각각이므로 0∼1의 값으로 표준화했다. 감축과 적응 각 4개의 지표를 하나의 지도로 담는 합산 작업에는 계층화분석과정(AHP)을 적용했다. 전문가에게 지표의 상대적 중요도를 묻는 쌍대비교로 가중치를 구하는 방법이다. 지표 선정은 숙명여대 안영환·유승직 교수가, AHP 설계는 ‘복합지표를 이용한 국가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논문을 쓴 숙명여대 석사과정 고도연씨가 도움을 주었다. 쌍대비교 설문에는 환경경제·대기과학·시민단체 관계자 15명이 참여했다.
◆‘퇴출 에너지원’ 화석연료 산업… ‘좌초자산’ 천문학적
때는 18××년.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로를 누비던 그때, 당신은 말을 몇 마리 사서 ‘마차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은 호황을 누렸고, 당신은 더 많은 말 농장을 인수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동차가 등장하더니 머잖아 마차를 밀어내고 말았다. 없어서 못 팔던 말은 이제 사료값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런 애물단지를 요즘 환경·경제 분야에서는 ‘좌초자산’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쓸 수는 있지만, 더는 경제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29일 글로벌 석유업체인 로열더치셸은 올 2분기에 최대 220억달러(26조4000억원)를 손실 처리(자산상각)한다고 밝혔다. 그보다 2주 앞서서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최대 175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손실로 처리하기로 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저유가 추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충격이지만, 코로나 상황이 진정된다 하더라도 석유 메이저의 전망은 밝지 않다. 온실가스 저감이 인류의 과제로 던져진 마당에 석유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겠다고 하는 건 자동차 등장 후에도 여전히 마차 사업에 기대를 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BP와 셸은 위기의식 속에 지난 2월과 4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석유 공룡기업의 잇따른 자산상각을 두고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기업이 여태껏 저탄소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며 “석유 업계가 아직 뽑아 올리지 않은 화석연료 대부분이 영원히 땅에 묻힌 채 좌초자산이 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석유 업체가 투자한 유전에 경제적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단 뜻이다.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이번 세기 말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를 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1.5도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국제사회가 이 목표를 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석유와 가스, 석탄 업계에서 발생할 좌초자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도 목표에서 3600억달러, 1.5도 목표에서는 8900억달러의 좌초자산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지구의 탄소허용 총량과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보유한 매장 자원의 탄소량을 근거로 계산한 값이다. 이뿐 아니라 가망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줄 투자자는 별로 없기 때문에 기존 에너지 기업의 자본비용(자본 조달에 드는 비용)은 오르고, 기업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이미 이런 조짐은 보인다. 노르웨이의 한 컨설팅 그룹은 코로나19가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미친 지난 1분기 셰일 기업의 자산상각 규모가 380억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셰일 혁명’을 이끈 체사피크에너지는 지난달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보다 한발 늦게 ‘그린 뉴딜’을 국가 비전으로 올린 한국의 좌초자산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금융 싱크탱크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좌초자산 위험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석탄화력발전을 보조금으로 뒷받침하며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경쟁력을 깎아내린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좌초자산 규모는 1060억달러로 예상돼 2위 인도(760억달러)와도 큰 격차를 보였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석탄화력발전소의 좌초자산이 5600억원에서 1조원 이상 발생할 것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정작 산업계는 아직 이런 경고에 무디다. 최근 한국전력의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투자 결정이 단적인 예다. 이 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두 번이나 적자 사업으로 평가됐는데, 지난달 말 한전은 끝내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한국 공적금융기관이 돈을 대고, 두산중공업이 발전소를 짓는다.
환경단체들은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한다”고 비판했고,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도 “공적금융기관의 석탄화력발전소 해외건설 금융지원은 한국이 기후악당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라며 “OECD 국가 중 공적금융기관이 해외석탄사업을 지원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인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전은 인도네시아 전력공사와 25년간 정해진 요금에 전력판매계약을 맺어 손실이 발생할 리 없고, 환경영향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는 논리로 계획을 접지 않았다.
◆경제대국 이룬 한국 기후위기 대응 ‘꼴찌’
‘세계 6위 수출국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환경 부문으로 무대를 옮기면 여전히 낙제생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고,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국민 한 사람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4위로 순위가 올라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과소비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2017년 에너지 소비량은 OECD 평균보다 40% 많다. 일본보다는 69%, 영국에 비하면 115%나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세계 4위 석탄수입국이자 3위의 석탄화력 해외 투자국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최하위다.
종합하면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건 탄소배출에 별 걸림돌이 없었던 시대라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린 뉴딜’은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에 두고 저탄소로 경제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이다. 유럽은 ‘2050년 탄소 순배출량(배출량-흡수량) 제로’를 목표로 내걸고 10년간 1조유로(약 1356조원)를 투입하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1000억유로는 가장 취약한 계층·지역·산업을 지원하는 ‘공정전환체계’에 쓰인다.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대통령인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주 등 주정부 차원에서 탈탄소 정책이 추진 중이다. 지난해 그린뉴딜 결의안도 하원을 통과했는데,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넘지 못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은 그린뉴딜을 공약으로 걸었다.
<중> 일자리 지각변동은 시작됐다
◆“우린 안 써주면 그만인 소모품”… ‘그린뉴딜’ 누군가엔 해고장
“지구 온도가 이미 많이 올라갔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석탄화력발전소 줄여야 하는 게 맞고, 탈석탄 정책에도 동의해요. 그런데 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우리는 갈 데가 없잖아요. 더구나 저 같은 하청근로자들은요, 업무 성격상 발전소가 문 닫지 않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전환하더라도 일거리가 사라져요.”
이태성(47)씨는 충남 태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대학생이 됐을 때 고향에서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가 공사 중이었고, 4호기가 완공됐을 때 당시 한국전력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2003년 민영화)에 입사했다. 1998년부터 23년째 그의 일터인 태안발전소는 3년 뒤 1·2호기를 시작으로 폐쇄 절차에 들어간다.
“연료(석탄)를 쌓아두는 발전소 야적장에 컨베이어 벨트가 있어요. 저는 기계 설비를 점검하고 제어실에서 오퍼레이터(운전자)로 일해왔죠. 이렇게 대형플랜트에 있다가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커요.”
발전소 업무는 크게 연료·발전·환경으로 나뉜다. 연료 과정에서 야적장의 석탄을 갈아 보일러에 보내면, 보일러에 불을 붙여 전기를 생산(발전)한다. 환경 파트는 남은 찌꺼기를 탈황·탈질 설비와 전기집진기를 거쳐 연돌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이 중 발전소 직고용자 즉 정규직 노동자는 발전 업무를, 연료와 환경은 이씨와 같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주로 맡는다.
충남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30기 있는데 노후화력은 설계수명이 다하는 대로 폐쇄하고, 나머지는 LNG발전소로 전환할 계획이다. LNG발전소는 가스를 주입하기 때문에 석탄발전소와 달리 연료나 환경 파트 노동자가 별로 필요 없다.
2018년 태안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를 맡은 그는 “원래 최대 관심사는 정규직 전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일자리가 아예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우리는 안 써주면 그만인 소모품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자리 전환이 굉장히 절박한 문제”라고 했다.
그린뉴딜은 탈탄소를 목표로 산업을 바꾸는 일이다.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밀려나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탄소 집약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전환 과정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린 뉴딜이 ‘정의로운 전환’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부품 적은 전기차, 일자리도 줄일까
자동차는 대표적인 고용 창출 산업이다. 우리나라 제조업 고용유발계수(10억원을 산출하기 위해 필요한 고용자 수)는 1.88인데 자동차는 2.19다. 자동차처럼 대형공장 위주로 돌아가는 다른 업종(반도체 0.88, 철강 0.60, 석유정제 0.11)과 비교하면 자동차는 일자리 창출 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전기차는 부품 자체가 내연차보다 적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연기관 차에는 약 3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반면, 전기차를 만들 땐 이 중 1만1000개가 필요 없다. 엔진부품은 100%, 전장품(시동모터 등 배터리에 연결된 전기부품)은 70%가 쓸모없어진다. 탄소제로를 위한 전기차 전환이 누군가에겐 해고장으로 날라올 수 있단 얘기다.
정부는 친환경차 국내 신차 비중을 현재 2.6%에서 2030년 33%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신차의 절반 수준인 23종의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불안감을 느낀 현대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미래형 자동차 발전동향과 노조의 대응’을 펴냈다. 의뢰를 맡은 연구진은 독일의 ‘전기차와 고용(ELAB) 2.0’ 시나리오를 한국 상황에 적용했다.
우선, 전기차 비중이 2025년 15%, 2030년 25%로 늘어나는 가장 ‘온건한’ 시나리오에서 현대자동차 감축 인원은 2025년 1321∼1629명, 2030년 2323∼2837명으로 예상됐다. 기아자동차도 2030년까지 최대 2207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 비중을 2025년 40%, 2030년 80%로 가정한 시나리오에서는 예상 감축 인원이 현대기아차 합쳐 최대 1만7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현대차는 퇴직자로 인한 자연감소가 있어 아직 인원 감축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스마트 공장 같은 무인화까지 가세하면 감축 인원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건 여기서 말하는 고용규모는 현대기아차 직원을 말할 뿐 1만명 가까운 소속 외 근로자(하도급)는 처음부터 계산에 빠졌다는 것이다.
보고서 책임연구원인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대기업은 (규모가 큰 만큼) 그 안에서 서로 일자리를 나눌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머플러 같은 내연기관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는 사업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성장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기 위한 지역 내 사회적 대화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자동차 생산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국내 부품업체는 기업 수로 따져 2886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일자리 전환, 노동자 목소리 들어야
자동차와 달리 발전 부문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함께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분야에 1100만명이 고용돼있다. 6년새 50% 넘게 늘었다.
새로운 산업은 기존 산업보다 노동력을 덜어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재생에너지 분야는 화석연료보다 더 노동집약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기존 연구들을 보면 석탄발전소의 직간접 고용효과는 GWh(기가와트시)당 연간 0.1∼0.2명, 현지에서 석탄 채굴까지 하는 경우에도 0.34명 정도다. 천연가스(0.1∼0.2명), 셰일(0.45명)도 비슷하다.
이에 비해 풍력발전은 적게는 0.05명에서 많게는 2명까지 고용을 유발한다. 여기서 관건은 풍력발전기 제작기술, 나아가 수출경쟁력이 있느냐다. 유럽에서 체코나 오스트리아는 풍력발전의 고용효과(이하 연간 GWh당)는 0.3명이다. 재생에너지 기술력이 있는 독일은 1.7명, 세계적인 풍력기업 베스타스가 있는 덴마크는 2.0명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광발전은 0.4∼7.9명으로 범주가 더 넓은데 패널을 다는 일반적인 형태(PV)냐, 태양 빛을 모아 열을 만드는 방식(CSP)이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지난해 연구에서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에서 2030년까지 적게는 1만3200여명, 많게는 28만2600여명분의 일자리가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일자리 순증 효과가 발생하더라도 기존 석탄발전소 노동자는 실직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이태성씨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현재 에너지 전환은 위에서부터 추진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재생에너지 향해… 脫석탄화 여정 가속
지난 4월16일 스웨덴 스톡홀름 동부 ‘KVV6’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았다. 스웨덴 마지막 석탄발전소였다. 발전소 소유주인 안데르스 에겔루드 스톡홀름 엑서지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30∼40년 전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했던 스톡홀름은 탄소에서 벗어나 완벽한 재생에너지 시대로 접어드는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에서 화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7%(2018년 기준)에 달한다. 우리로서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을 닫는 상황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유럽에선 스웨덴이 벌써 세 번째다. 2016년 벨기에가 스타트를 끊었고 오스트리아가 스웨덴 KVV6 폐쇄 며칠 전 마지막 발전소 문을 닫았다.
탈석탄이 본격화한 이들 지역에서는 일자리와 지역사회 산업구조 전환도 중요한 과제다. 벨기에의 석탄광산 도시 젠크는 7000명이 일하던 석탄 광산에 에너지 전환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유치해 93㏊의 기술단지로 변화시켰다.
영국 발전기업인 드랙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없는 회사를 만든다는 목표 하에 2025년 이전 발전소 폐쇄를 결정했다. 발전소 폐쇄는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직원대표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정부와 다른 기업들에 ‘제로카본 기술 태스크포스’에 동참하지고 건의했다.
드랙스는 영국 최대 산업단지인 험버에 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갖춘 바이오에너지(BECCS) 단지를 세워 세계 최초 넷제로(Net Zero) 산업지역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석탄과 탄소집약 지역의 전환을 위한 사업을 발족했다. ‘석탄지역전환 플랫폼’은 그중 하나인데 정부와 기업, 노조, 시민사회단체, 학계가 참여하는 공개된 포럼이다. 플랫폼을 통해 EU 석탄지역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역별 접근법을 공유한다.
<하>문제는 '정의로운 전환'
◆“脫석탄 고용대책 빠진 ‘그린뉴딜’… 일자리 전환 고민 필요”
‘대한민국 경제 기반을 친환경·저탄소로 전환하는 것.’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그린뉴딜’은 이렇게 정리된다. 세계일보는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 시리즈를 통해 환경문제가 경제를 도미노처럼 밀어뜨릴 수 있으며, 대응 과정에서 약자가 소외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뉴딜은 과연 모두에게 이로운 ‘정의로운 전환’ 형태로 이뤄질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겸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인 이유진 박사,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 이명박정부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을 지낸 김상협 카이스트 녹색성장대학원 교수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할 것을 지시한 지 약 두 달 만에 종합계획이 나왔다. 어떻게 보셨는지.
홍종호 교수(이하 홍)=“전체적으로 재정투자 규모와 일자리 효과는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탄소 저감 장기목표, 재생에너지 확대 장기목표, 이를 위한 각종 정책수단과 집행에 관한 내용이 빠져 아쉽다. 앞으로 전기요금 정상화, 전기차 의무판매제 등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5년간 총 42조원이라는 재정 규모도 비교적 약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역내 그린딜 투자 규모를 7년간 약 1000조원으로 발표했다. EU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의 대략 10배 정도 되니까 이를 감안해 우리도 100조원 정도 하면 어땠을까.”
이유진 박사(이하 이)=“미국은 ‘기후위기 대응과 미국사회 만연한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대안’, EU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이자 새로운 성장전략’이라는 정의가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의 그린뉴딜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분명치 않은 것 같다. 또 지난달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된 내용에 뭐가 더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린뉴딜을 중장기전략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중장기 전략 아래 분명한 감축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걸 중심으로 에너지, 건물, 교통, 산업, 농업 전반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김상협 교수(이하 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린뉴딜을 받아들이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걸 왜 하는 건지, 누굴 위해서 하는 건지 분명하지가 않다. 일단 ‘왜’라는 관점에서 보자. 그린뉴딜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인데 그런 목표가 없다. 또,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가 그린뉴딜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저감목표를 제시할 때 유럽처럼 ‘2050 넷제로’(2050년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것. 탄소중립이라고도 함)를 선언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인가.
이=“이번 발표에도 탄소중립이란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그런데 목표 연도가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5도 보고서’를 냈고, 미국과 유럽 각 나라에서도 2050년 넷제로를 해야 이번 세기 말 온도상승폭이 1.5도에서 안정화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이 기후악당으로 불리는 상황에서 당연히 그런 메시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3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기술이 변할 수도 있고,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더 높아질 수도 있고…. 2050 넷제로는 아주 디테일한 숫자와 내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1.5도를 위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김=“넷제로 선언 그 자체가 중요하진 않지만 목표설정은 중요하다. 이명박정부도 녹색성장을 하며 2020년 탄소배출량을 BAU(현 추세를 이어가는 것) 대비 30% 줄인다는 목표를 걸었다. 2010년 9%였던 온실가스 증가율이 임기 말인 2012년 0.4%로 내려갔다. 이 추세라면 2015∼2018년 증가율이 제로에 도달하리라 예상했는데 정부가 바뀌고 정책도 바뀌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홍=“경제학자로서 솔직히 2050 넷제로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실현될까, 이런 의문이 든다. 유럽 같은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물, 수송 이런 부문에서 넷제로를 달성하는 건 너무너무 힘든 일이다. 차라리 전환(발전) 부문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도, 위기감을 봤을 때 넷제로라고 하면 ‘황당하다’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차라리 ‘재생에너지 비중을 60%, 70%로 하겠다. 이때 일자리는 얼마가 만들어지고, 부가가치는 어떻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더 구체적이고 국민에게도 익숙한 설득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태양광이라고 하면 ‘산을 밀어버리고 패널 꽂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풍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상당하고. 정부로서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제시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까.
홍=“에너지 전환정책을 내걸었을 때 어색함이나 거부감은 당연하다. 외국도 처음에 할 때는 어려워했다. 이걸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풍력발전 이미 허가받은 용량이 10GW다. 그런데 현장 갈등으로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이런 걸 패스트트랙으로 하겠다고 밝히고 이런 사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고, 지역 중소건설업체와 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해서 ‘아,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돈이 도는구나’를 보여줘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내용이 충분히 담겼다고 생각하는가.
이=“먼저 용어부터 정리가 안 됐다. 이번 발표에는 ‘공정한 전환’이라고 했는데,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서는 원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를 썼다. 내용 역시 새로운 산업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석탄처럼 사라지는 부분에 대한 대책이 없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전환에 대해 정부의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홍=“에너지전환은 일자리전환을 수반한다. 회색일자리가 녹색일자리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린뉴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고용안정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이다. 이날 발표에 구조적 일자리 상실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신규 일자리 창출만 언급하고 있다. 상실 일자리 규모도 같이 언급하면서 순증 일자리를 말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롭고 솔직하고 책임있는 자세다.”
김=“어떤 정의가 필요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자. 빈부차를 해소하는 정의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의 정의도 있다. 기후위기에서는 어쩌면 세대 간 정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가 우리 어른 세대가 저지른 문제를 젊은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아닌가. 따라서 그린뉴딜에서 정의란, 기성세대를 위한 돈잔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누릴 몫을 남겨두는 것이 돼야 한다. 그게 곧 지속가능발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10개월 정도 남았다. 그린뉴딜 정책 자체는 지속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
김=“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은 박근혜정부로 넘어오면서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금기어처럼 돼버렸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책이 이어지려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통해 법제화가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여당이 상임위원회를 독식한 상태에서 만장일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야당은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린뉴딜은 국회의원의 문제도 아니고, 공무원 문제도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다음 정부가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홍=“정부가 바뀌더라도 큰 흐름은 안 바뀔 거다. 세계적 흐름이 그렇다. 물론 지금 현재 전략과 의지, 전문성 모두 미숙한 면이 있지만, 큰 틀에서 방향은 맞다. 이걸 거스르는 건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그린뉴딜을 없던 일로 되돌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부가 두 달 만에 그린뉴딜의 모든 것을 그릴 순 없었으리라 본다. 이번 발표로 ‘그린뉴딜이 이것이다’라고 보기보다는 정책의 문을 열어놓고 논의를 더 확장해 가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