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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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부동산·남북관계…文 대통령, ‘독식 국회’서 야당 협조만 강조

“코로나 사태 극복 위해 초당적 협력 필요
여야정 협의체 재개 등으로 소통 확대
‘한국판 뉴딜’ 걸림돌 규제혁파 힘 모아야
사상 최초 남북국회 회담 성사되길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21대 국회 개원연설 키워드는 ‘협치’였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한국판 뉴딜’을 포함해 부동산 대책, 남북관계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76명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한 ‘독식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만을 강조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30분가량 진행한 연설에서 “(20대 국회의) 가장 큰 실패는 ‘협치의 실패’였다. 국민들 앞에서 협치를 다짐했지만, 실천이 이어지지 못했다”며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위기와 격변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선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지론이 반영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재개를 비롯해 대화의 형식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국회와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며 “여야와 정부가 정례적으로 만나 신뢰를 쌓고,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추진하겠다”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과 관련해 “우리의 경제 지표들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하며 “때를 놓치지 말고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살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한 ‘한국판 뉴딜’을 설명한 후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혁파에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제시해도 국회의 입법을 통한 제도개선 등 협치가 없으면 성장 동력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국회 개원식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선 원칙적 수준의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낸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성과들은 아직까지 미완성”이라며 “역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들의 ‘제도화’와 사상 최초의 ‘남북 국회 회담’도 21대 국회에서 꼭 성사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 후 참석자들과 환담자리에서 “각 당 대표님들을 또 청와대에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한국판 뉴딜을 위한 재원이 160조원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과감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오랫동안 금융 쪽이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금융자산과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민간펀드를 만들어 한국판 뉴딜사업을 추진하려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연설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날 문 대통령이 오후 2시 20분쯤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의원들은 기립해 박수로 맞았다. 일부 통합당 의원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남색 정장과 각 당의 상징인 파랑, 분홍, 노랑, 주황색이 골고루 들어간 넥타이를 맸다.

통합당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연설 초반 문 대통령이 “‘협치’도 손바닥이 서로 마주쳐야 가능하다”고 말하자 통합당 쪽 좌석에선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전례 없는 투자를 약속했다며 “일자리도 2022년까지 89만개, 2025년까지 190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발언하자 통합당 쪽 좌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날 연설 도중 박수는 총 18차례 나왔지만 통합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의원들은 대부분 박수를 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연설을 들었다. 문 대통령이 국회 의사당을 나서자 한 시민이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내야 한다”며 문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신발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발은 문 대통령 몇 미터 옆으로 떨어졌고 국회 경위가 시민을 곧바로 제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제21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 김영춘 사무총장의 영접을 받으며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당 “文, 자화자찬… 국민 눈높이 못 미쳐”

 

미래통합당은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21대 국회 개원연설을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개원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없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현안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국민과 국회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은 물론 부동산정책과 대북정책 실패, 잇따른 광역단체장의 성범죄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솔직담백한 사과를 기다렸다”며 “그런데 (사과는)한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국회 탓, 야당 탓이라는 말로 들렸다”고 비판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의 협치 주문이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 중진의원은 “협치는 의석이 많은 여당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모두 독식한 것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다”며 “자화자찬으로 가득했다”고 꼬집었다. 한 초선의원은 “경제 살리기와 코로나19 극복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협치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또 협치를 주문하는 내용에서는 유체이탈 인상마저 받았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담회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개원연설에 앞서 문 대통령에게 던지는 10가지 질문을 공개하며 답변을 촉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여야의 바람직한 협치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입장 △소득주도성장 실패·탈원전과 그린 뉴딜 정책의 충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입장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선 배경 등 정책 실패와 여권발 악재에 대해 질문했다. 주 원내대표는 개원연설 후 문 대통령과의 환담회에서 10개 질문을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을 통해 전달했다.

 

주 원내대표는 잇따른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비위 사건을 언급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왜 언급이 없느냐”며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처를 할 계획은 없나”고 물었다. 이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책임 있는 여당, 책임 있는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말씀에 책임을 지고 여당에 무공천을 요구하실 계획은 없으신지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 수석은 이날 주 원내대표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통합당이 발표한 10개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변하겠다”며 “다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 문제는 (청와대가)답할 문제는 아니다. 수사 상황을 흘렸다는 의혹은 전혀 없다고 답을 했다”고 선을 그었다.

 

박현준·곽은산·이창훈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