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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 “협상용” vs “현실화” [전문가 긴급 진단]

“주한미군 감축, 백악관 보고 시기로 볼 때 방위비 압박용”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의 모습. 뉴스1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시 부상할 조짐이다. 지난 17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제시했다”며 미군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뒤다. 같은 날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배포한 ‘국가방위전략(NDS) 이행: 첫 1년의 성취’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앞으로 몇 달 안에 인도·태평양사령부 미군 재배치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가능성을 키우는 양상이다.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속한 주한미군 역시 재편 대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일련의 과정은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의 주독미군 감축 결정 때와 흡사하다는 분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국방부는 20일 “한·미 간에 논의된 바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군 안팎에서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협상용이냐 vs 진심이냐”… 전문가 분석은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감축 옵션이 방위비분담금 협상용인지, 진짜 철군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두 개가 다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백악관에 보고된 시기가 올봄이었으니 그걸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방위비 압박용에 무게가 실린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으로 볼 때 감축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시리아에서 빠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과 협상하고… 자기가 약속했던 공약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한국이 굴복해 미국이 요구한 분담금을 내주면 좋고, 안 해주면 3000∼4000명 되는 병력을 빼서 (다른 곳으로) 순환배치하면 된다. 두 카드를 한손에 들고 흔들어 대는 거 같다”고 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방위비분담금과 연계시켜 볼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협상이 반년이 지나도록 타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독미군 철군 배경도 그것과 연관돼 있었다. 이 때문에 협상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문 센터장은 그러면서도 주한미군이 철수를 감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과거에도 철수는 여러 번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북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지고 있고 중국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상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주한미군 철수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변수는 트럼프의 재선 여부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철군 관련 이야기가 더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민주당이 집권하면 달라진다”라고 덧붙였다.

문성묵 센터장(왼쪽부터), 조성렬 위원, 김열수 실장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의 협상전술’로 단정했다. 그는 “우선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말했다는 게 3월이다. 그리고 실제로 제7차 방위비 협상이 3월 하순에 있었다. 협상 압박을 위해 그 안을 검토했던 거 같다. 현실성 있는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월에 나온 얘기가 넉달이 지나서 보도가 나온 게 의문이다. 향후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일부러 흘린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실제 철수 가능성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하지만 국제정세 변화와 미국 국익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역시 어떤 형태로든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주한미군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금 당장 주한미군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군은 준비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나 미국내 여론에 따라 한반도에서 병력을 감축하든 아예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증감과 관련한 현황을 살펴보면, 1954년 6·25전쟁 참전 미군 30여만명 가운데 2개 사단만 남기고 대규모 철수를 단행한 뒤 1960년대까지 주한미군 규모는 6만3000여명 정도였다. 그러다 1969년 7월 ‘닉슨독트린’으로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 한국에서의 미군 감축이 본격화됐다.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6년 8월 판문점에서 북한군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는 등 북한의 위협이 가시화하는 과정에서도 77년 1월 취임 후 선거공약 이행을 위해 주한미군 3만3000여명을 4∼5년 내에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고, 그해 3월 8일 워싱턴을 방문한 박동진 전 외무장관에게 이를 통보했다. 한국과 한마디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일방적 통보였다. 이후 77년 6월과 8월 사이에 1023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78년 말까지 3400명이 한반도를 떠났다. 미 정부 안팎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1970년 1월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 미군이 영구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미국의 전략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 규모는 늘 변화했다.

◆우리 국방부 입장과 대응은

 

국방부는 이날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제시했다는 외신 보도와 관련해 한·미 간에 논의된 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한 질문에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 주한미군 규모 조정 등과 관련해서 한·미 양국 간 논의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문 센터장은 “국방부는 우리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외신 보도를 인정할수 없다는 거 같은데, 그렇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그러고 나서 주한미군 감축을 분담금과 연관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재선 성공 또는 실패 대비 전략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병진·박수찬 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