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된 인천 지역 정수장이 부실하게 관리된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정수장 활성탄 여과지동 안에서 날벌레 사체가 다량으로 발견된 점으로 미뤄 건물 출입문이나 방충망 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운영된 것에서 비롯한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현한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유역본부 한강수도지원센터장은 21일 인천 공촌정수장 현장에 가 정수장에 적용된 활성탄 여과지를 확인한 뒤 연합뉴스에 “밀폐를 제대로 해놓지 않아 깔따구가 들어가게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활성탄 여과지란 정수장에서 물 속 불순물 등을 걸러내기 위해 설치한 정수 시설이다. 공촌정수장은 인천 서구, 중구 지역 등에 수돗물을 공급한다.
당초 공촌정수장에서 유충이 발견된 이유로 지난해 9월 시작된 조기 가동이 꼽혔다. 이 당시 깔따구가 활성탄 여과지에 알을 낳아 유충이 생겼단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수장에 벌레 유입을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밖에 벌레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던 것 아니냐는 등의 추측이 새롭게 제기됐다.
설비 구조상 유충이 발생하기 더 힘든 인천 부평정수장에서도 활성탄 여과지에 발견된 유기물이 유충으로 확인되며 이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부평정수장은 공촌정수장과 달리 정수 설비 간 차단막이 설치돼 ‘폐쇄형’으로 분류된다. 공촌정수장을 살펴본 김 센터장은 “공촌정수장 여과지동에도 사실상 출입문이나 방충망 등이 모두 설치돼있어 폐쇄형으로 볼 수 있다”며 문제 원인이 비슷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공촌정수장을 점검하며 활성탄 여과지에 있는 입자를 삽으로 파고 손으로 쓸기만 했는데도 살아 있는 깔따구 유충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발견했다. 정수장 여과지동 내에 깔따구뿐 아니라 나방 등 다른 벌레의 사체도 다량 발견되며 그만큼 정수장 안에 유입된 벌레가 많다고 보고 있다. 이 점을 토대로 평소 정수장 여과지동에 벌레 유입을 막는 출입문이나 방충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촌정수장의 고도정수처리공정을 표준공정으로 전환한 뒤인 지난 14일, 김 센터장이 공촌정수장 여과지동 현장을 확인했을 때도 문은 열린 상태였다. 김 센터장은 “당시 조사를 위해서 문을 열어놓은 것인지 평소에도 열려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면서도 “관리자들이 유사사례가 없다 보니 벌레가 들어와 알을 낳고 그 알이 수도꼭지까지 갈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소 정수장은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 날벌레가 날아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활성탄 세척 주기는 15∼20일로 길어 제때 유충을 제거하지 못했다.
현재 상수도와 생물 분야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수돗물 유충 관련 전문가 합동정밀조사단’은 정수장 시설 설계와 관리 등 수돗물 유충 발생 원인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단장을 맡은 현인환 단국대 명예교수는 “아직 원인을 규명 중이고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며 “정수장(여과지동)에 열린 틈이 있었는지 유충 발생 원인을 정밀분석을 통해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천 지역에서는 지난 9일 수돗물에 벌레가 있다는 민원이 처음 발생한 뒤 전날 오후 6시까지 유충이 187건 발견됐다. 환경부는 활성탄 여과지가 설치된 전국 정수장 49곳을 점검, 인천 공촌정수장과 부평정수장 외에 경기 화성·김해 삼계·양산 범어·울산 회야·의령 화정정수장 등 5곳에서도 유충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